[MT 시평] ‘젠트리피케이션’의 말 뜻

머니투데이 조명래 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2016.07.12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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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젠트리피케이션’의 말 뜻


최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어려운 영어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현재의 용법을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은 대개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영어말이 어렵다보니 일부 지자체는 ‘둥지 내몰림’으로 번역해 사용하고 국립국어원은 이의 공식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 말 자체는 ‘도심 재활성화’란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용어다. ‘둥지 내몰림’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한 측면에 불과하다. 낙후된 도심의 재활성화란 현상 자체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갖고 있고 논란이 되더라도 찬반의 입장이 나뉜다.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은 서구에서 정책개념으로 등장하기 전에 ‘도심 재활성화’, 즉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로 사용됐다. 도시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연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은 지주 출신 양반을 가리키는 ‘젠트리’(gentry)에 나왔다. 우리말의 신사는 품격 있는 젠틀 출신의 사람으로서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지칭한다. 따라서 ‘어반(urban) 젠트리피케이션’을 직역하면 ‘도시 신사화’다. 노후하고 남루한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이 멋지고 세련된 곳으로 변하는 현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문화적 취향이 강한 중산층, 예술인, 사업가, 혹은 관련기능과 시설(캘러리, 카페, 공방 등)이 몰려들면서 생긴 결과로 ‘장소의 문화화’를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나 로마 식민지 아래 영국에서 작은 가게들이 있던 곳이 점차 면모를 갖춘 대규모 주거지로 바뀌는 현상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 용어는 1888년 ‘영국 맨체스터 인문학 및 철학협회 백서’란 문헌에서 처음 사용됐다. 도시연구와 관련해서는 1930년대 미국 시카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들이 도시의 특정 지역에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인구나 업종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돼가는 현상을 ‘도시생태학’으로 설명했다. 이는 도시사회학 이론의 기초가 될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용법으로는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이 클래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저소득 노동자와 그들이 살던 주거지가 중산층 사람들의 이입으로 대체되어가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로 기술했다. 실제 당시 런던의 많은 노동자 지역은 중산층 지역으로 야금야금 변해갔다. 그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지대의 논리’와 ‘계급의 논리’ 두 축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도심 낙후지역으로 문화적 기호성이 강한 중산층 혹은 관련기능의 집단 이입에 따라 도심의 문화적 재활성화가 반드시 이 두 논리로 왜곡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역사회의 구성이 어떠한 응집력을 갖고, 문화생태계가 어떻게 구축되며, 도시산업이 어떻게 재구조화되고,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따라가느냐 등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는 달라진다. 도시재생은 경제, 문화, 사회, 환경 모든 측면에서 도심이 재활성화되는, 즉 ‘도시 신사화’(젠트리피케이션)를 기실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의 냉혹한 논리가 따라붙으면 둥지 내몰림이란 나쁜 젠트리피케이션이 초래될 것이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의 남용으로 ‘좋은 젠트리피케이션’까지 놓쳐선 안 된다. 목욕물 버리면서 애기까지 버려선 아니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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