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전 오늘…희귀병도 '긍정'으로 받아들인 美 최고 야구선수 은퇴식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2016.07.0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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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루게릭병으로 잘 알려진 야구선수 루 게릭, 근위축성 측생 경화

77년 전 오늘…희귀병도 '긍정'으로 받아들인 美 최고 야구선수 은퇴식


77년 전 오늘…희귀병도 '긍정'으로 받아들인 美 최고 야구선수 은퇴식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야구장에서 17년을 뛰었고 팬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만 받았습니다"

77년 전 오늘(1939년 7월4일) 미국 뉴욕 더블헤더 사이에 경기장. 응원으로 떠들썩해야 할 경기장에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6만명 넘는 관중의 시선은 한 남성에게 쏠렸다. 그들이 주목한 남성은 루 게릭. 뉴욕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선수다.

이날 그의 은퇴식이 열렸다. 루 게릭은 12년 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을 밝히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가 여전히 경기장에서 뛰길 바라는 팬이 대다수였지만 루 게릭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을 앓아 더이상 경기를 뛸 수 없게 됐기 때문.

뉴욕 맨해튼에서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루 게릭은 1923년 MLB 입성 이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은퇴한 1939년까지 뉴욕양키스에서 뛰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2130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세웠다. 팬들은 그를 '철마'(The Iron Horse)로 불렀다. 이 기록은 1995년 칼 립켄 주니어가 깨기까지 56년간 이어졌다. 8시즌 연속 120타점 이상, 역대 1루수 최다 타점과 득점 및 최고 출루율도 그가 남긴 기록이다.



선수로서 승승장구하던 루 게릭에게 갑자기 불행이 찾아왔다. 1934년 경기를 뛰던 중 심한 허리통증을 느껴 병원으로 향한 것. 그는 그때 통증을 '등 쪽의 차가운 느낌'으로 묘사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근무력증의 첫번째 징후로 추정한다.

이후 그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예전처럼 힘차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었다. 루 게릭은 1939년 시즌을 앞두고 열린 스프링캠프에서 안타 하나를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그해 5월 조 매카시 감독에게 더이상 출전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출장기록도 여기서 멈췄다.

그는 결국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는다. 병명은 근위축성 측생 경화증. 야구선수로서는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진단을 받은 1주일 뒤인 6월13일, 루 게릭은 누구보다 담담하게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은퇴를 선언한다.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루 게릭.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루 게릭.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루 게릭이 은퇴식 당일 팬들 앞에서 한 연설은 지금까지도 명연설로 꼽힌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연설은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루 게릭에 대한 존경은 '이례적인' 예우로도 표현됐다. 그의 소속팀 뉴욕양키스는 은퇴식 날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MLB 최초 영구결번이었다. 1939년 시즌 종료와 함께 전미야구기자협회도 그를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루 게릭의 삶은 은퇴 이후 더욱 빛났다. 길어야 3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가석방 위원으로 활동하며 뉴욕 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은퇴 뒤 "절망하거나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삶을 그대로 살아갔다.

루 게릭은 1941년 6월 은퇴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뉴욕양키스 팬들은 물론 미국 전역에서 그를 애도했다. 그의 이름은 그가 앓았던 병의 또다른 이름인 '루게릭병'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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