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브렉시트 '대책반'이 할 일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2016.06.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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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브렉시트 '대책반'이 할 일


브렉시트(Brexit)는 역사상 영국이 전 세계에 가장 단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건일 듯 하다. '대영제국' 당시도 이처럼 하루만에 전세계를 통째로 뒤흔들지는 못했을테니 말이다.

1933년 유대인과 외부를 '독일의 적'으로 삼아 44%의 지지를 얻어낸 히틀러나 EU(유럽연합)탈퇴를 정치적 지렛대로 삼은 영국 정치인들이나, 위기에 화살을 바깥으로 돌리고 희생양을 찾는 건 고전적 방법이다.



자산가치 급락, 국가신용등급 하락, 자본이탈 움직임을 불러오고 있는 (절반의)영국인들의 '자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한 축인 '세계화'에 대한 역풍이라는 분석의 반대편에선 EU의 반자유적 규제와 간섭에 맞선 자유주의의 부활이라는 예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한 가지 잣대로 브렉시트를 규정하려는 것 자체가 또하나의 선동이다.

확실한 건, 영국인들의 '분노의 투표'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 계층·지역간 소득불균형 확대,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안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정치선동이 내부적 모순의 약한 고리를 파고 들때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식의 의사표출이 나타난다.



정부는 연일 대책회의를 가동하고 있다. 세계 각국도 경기부양책을 앞다퉈 내놓을 것이다. 우리 수출 기업들은 환율변동에 따른 수혜를 입을 가능성도 있고 보면, 금융시장은 늘 그랬듯 새로운 반등 논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걸로 된 걸까.

정부의 '대책반' '점검반'이 정말로 살펴야 할 건 나라 바깥이나 금융시장이 아니다. 브렉시트 투표 이전에 우리 역시 이미 지난 총선투표로 사회에 응축돼 온 분노와 좌절의 단면을 확인한 바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2014년 취임 당시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득주도 성장이 답이다"라고 했다. 국민들의 지갑을 채워줌으로써 수요를 창출하고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함께 제시됐다. 하지만 일자리도 사회안전망도 소득재분배도 개선되지 않았다. 말은 앞섰고, 쓸 돈은 없고, 이데올로기 도그마는 실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실토'했던 유승민은 쫓겨났다. 담뱃값 인상 같은 '증세 아닌 증세'가 동원됐고,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금이 오르게 된 월급쟁이들이 반발했다. 증세 없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 세무조사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국세청장은 옷을 벗었다.
증세에 대해서는 "다 해보고 안되면 마지막에 선택할 것"이라는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고용창출이나 가계소득 증대효과가 낮은 배당이나 투자에 혜택을 집중하는 또 다른 버전의 '낙수효과' 정책, 발생할 이익에 대한 과세가 아닌 기업의 '내부유보'를 겨냥한 우회정책은 유효기간(2017년)이 끝나기도 전에 흔적도 제대로 찾기 힘들게 됐다(유일호 부총리는 그마저 존재감이 없다).
다 해봤는데 안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야당 주장처럼 법인세만을 타깃 삼아 될 문제도 아니다. 이자 배당 투자수익 임대료 면허권 같은 넓은 의미의 '지대(rent)'에 대한 과세와 근로소득 과세 사이의 불평등을 총체적으로 수술하는 조세개혁이야말로 곧 닥칠지 모르는 '브렉시트'식 비용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망'이다.

조세개혁이 자본 기득권의 양보라면, 고용유연성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노동개혁은 노동부문이 해야 할 양보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지금처럼 힘들 땐 고용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조선업같은 부실업종 구조조정이 잘 안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고용유연성이 보장된다면 기업으로서도 생산성이 낮은 비숙련 비정규직을 고집할 이유가 적어진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역시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해 인건비 부담을 줄여줘야 기업도 숨통이 트인다.

"고용유연성 확보, 동일노동 동일임금,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하고 임금 인상 자제할테니 회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고용을 늘리고, 하청업체 임금 올려달라" 이렇게 노조가 요구한다면 '기득권세력'으로 낙인 찍히기 시작한 한국의 노동운동이 30년만에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노동과 자본 양측 기득권 세력들의 결단과 '빅 딜'을 조율해내는게 정부가 해야 할 대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금융시장 위기대응을 주문하면서 "이제 더 머뭇거리고 물러날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맞다. 브렉시트를 금융시장의 일시적 충격으로 보거나, 남의 나라 정치 이야기로 여긴다면 진짜 '대책'은 나올 수 없다.
정부 뿐 아니라 기업 노동자 모두 브렉시트 앞에서 전율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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