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많이 올랐지만 더 팍팍해진 한국인의 삶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정혜윤 기자 2016.06.28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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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3>-②'BASIC' 지표로 본 한국의 현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수출 세계 6위, GDP 규모 세계 11위 등 경제규모나 지표로 보면 그렇다. 이미 20년 전 선진국 클럽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시대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과연 선진국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앞으로 20년 동안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월급은 많이 올랐지만 더 팍팍해진 한국인의 삶


#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에 위치한 양양국제공항. 20년 전(1997년 1월)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연간 166만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중국 상하이와 김해를 오가는 정기노선 2편만 운행되고 있다. 하루 이용객은 300명에 불과하다. 연간 이용객도 10만명 안팎이다. 이런 까닭에 해마다 수십억원의 적자가 난다.

이 공항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대선 때 내놓은 영동권 신공항 공약의 결과물이다. 정치 논리로 지어진 것이다. 35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돼 2002년 화려하게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세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20년이 흘렀지만, 정치권 구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의 표를 ‘공략’하기 위한 솔깃한 ‘공약’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여곡절 끝에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영남권 신공항이 대표적이다. 이 사례를 보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 후진성은 여전한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러 제도적 측면과 사회적 자본 활용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경제 주체간 신뢰를 쌓아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론 꾸준히 성장했지만, 진정한 선진국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건 이러한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라는 얘기다.

정치와 더불어 각종 사회문제도 대한민국의 도약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년동안 국민 삶의 지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머니투데이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전·현직 고위 관료 등 전문가 50명에게 받은 설문에서 도출한 선진국의 조건 ‘BASIC’ 즉 ‘Balance(균형), Advance(성장), Standard(규범), Innovation(혁신), Capacity(수용)’ 등을 담은 5가지 지표를 보면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 양극화 문제가 심해졌다. 균형 있는 발전이 막히고 부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2인 이상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소득을 기준으로 줄을 세웠을 때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비율)은 2014년 기준 10.8%로 1996년(8.2%)보다 2.6%포인트 높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실제 5인 이상 국내 모든 기업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을 살펴보면 1996년 104만9895원에서 지난해 281만9807원원으로 올랐는데, 300인 이상 큰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하면 같은 기간 111만3222원에서 322만2737원으로 더 많이 증가했다. 저소득층 소득대비 주택가격 배수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6.3배에서 2014년 8.3배로 늘었는데, 고소득층은 같은 기간 3.6배에서 4.7배로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수치가 높을수록 주거비 부담이 많다는 뜻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 높음)도 20년전 0.257에서 2014년 0.277로 상승했다. 양극화 정도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들이 모두 악화된 것이다. 물가는 많이 올라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졌다. 1996년 한갑에 1300원이었던 담배는 지난해 기준으로 4500원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시내버스 비용은 4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랐다. 국민 음식인 자장면 가격도 한 그릇에 2000원 안팎에서 지금은 5000~6000원이 넘는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돈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균형 잡힌 발전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국민 삶의 질과 행복체감도가 좋아지고, 각종 사회 문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 사회 문제도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총 범죄 건수는 1996년 141만9811건에서 2014년 기준 177만8966건으로 크게 늘었다. 인구10만명당 총 범죄 건수도 3109건(1995년)에서 3768건(2014년)으로 650건 이상 증가했다.

법을 어기는 범죄와 더불어 원칙을 지키지 않는 지표도 나빠졌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을 보면 15대 국회(1996~2000년)의 법안 폐기율은 20%였는데, 19대 국회(2012~2016년)의 폐기율은 55%를 기록했다.

이밖에 자살률과 실업률 등 다양한 사회 고통지표도 우리 삶이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996년 13명에서 2014년 27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청년실업률은 1996년 4.6%에서 지난해 9.2%로 상승하는 등 일자리 여건이 악화됐다. 연간 이혼건수는 1996년 7만9895건에서 10만9153건으로 늘었다.

성장과 혁신을 나타내는 지표는 개선됐다. 1996년 1만3077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5년 2만7340달러로 두배 이상 늘었다. 나라 살림 규모를 나타내는 국가 예산도 1996년 62조9000억원에서 올해 386조7000억원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IT강국인 우리나라의 혁신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인터넷 이용률은 2000년 44.7%에서 2015년 85.1%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인구 만명당 스마트폰 가입률도 2011년 4536명에서 2014년 8044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이 같은 환경을 바탕으로 ICT(정보통신기술) 생산액은 1996년 14조8076억원에서 2014년 71조7174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경제 발전에 따라 다양성 수용 지표도 호전됐다. 이민자 급증으로 국제결혼 건수가 2000년 1만1605건에서 2014년 2만331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고용률도 1996년 48.1%에서 2015년 49.9%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사회적 현안들을 국민 입장에서 해결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기본이 바로 선, 국민이 행복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경제를 기반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원칙과 상식을 지키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선진국이 된다”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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