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용선료 지급방식 변경으로 현대상선 살아날까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6.06.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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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그정도로 나아질 해운업이었다면 그렇게 난리칠 이유가 없었다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현대상선은 지난 10일 5개 컨테이너 선주들과 20%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고 벌크 선주들과는 25% 수준에서 합의 의사를 받아 향후 3년 반 동안 지급예정인 용선료 약 2조 5000억원 중 약 5300억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용선료 협상은 당초 목표에는 못미치지만 현대상선 (15,850원 ▼170 -1.06%)의 자구안 시행에 긍정적이라며 곧바로 다음달 7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이번 용선료 인하 협상으로 거의 좌초될 위기에 있던 현대상선은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말 발표한대로 12억달러(약 1조4200억원) 규모 선박펀드를 통해 해운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측면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용선료 인하 협상 성공으로 현대상선의 문제가 단번에 풀려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상은 용선료가 인하된 것이 아니라 용선료 지급방식이 재조정된 것에 불과했다. 현대상선은 이번 협상으로 깎인 5300억원의 용선료 중 50%는 신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장기 채권으로 지급한다. 즉 약 2600억원의 용선료는 주식 교부로 대체하고 나머지 절반은 장기 채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현대상선 용선료 깎인 게 맞나요?…이상한 계산법)



결과적으로 선주 입장에선 이번 용선료 협상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게 없다. 물론 재무재표상 현대상선이 부담할 용선료는 연간 1500억원 정도 줄어든 것이 맞다. 하지만 선주들에게 지급해야 할 총 용선료 자체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다. 쉽게 말해 현금으로 줄 용선료를 주식과 채권으로 주는 것일 뿐이다. 용선료 협상은 결국 주주들에게 용선료를 전가한 꼴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건 현대상선 (15,850원 ▼170 -1.06%) 부채 5조5000억원 중에서 10%도 안되는 5300억원의 용선료를 탕감받은 것도 아니요, 다른 형태로 지급하는 것을 갖고 마치 현대상선의 운명이 좌우될 것처럼 난리를 쳤다는 점이다.

온 나라가 노심초사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결과를 기다렸고 현정은 회장이 선주들에게 눈물의 편지까지 써가며 얻어냈다는 것이 겨우 현금으로 줄 용선료를 주식과 채권으로 주는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번 용선료 조정으로 현대상선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나아진 것도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현대상선의 핵심 사업부는 이미 다 매각이 된 상태이다.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대상선의 글로벌 경쟁력은 이미 약화될대로 약화된 상태이며, 최근 최대 해운 얼라이언스인 2M에 참여신청을 타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글로벌 컨테이너선 선복량은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달초 글로벌 해운사들의 공동운임인상(GRI)으로 일제히 상승했던 유럽과 미국 서부노선 운임이 2주 연속 하락했다. 성수기를 맞이하여 해운업체들은 운임상승을 기대했지만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제2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글로벌 대형 선사들의 경쟁력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동안 5000TEU 미만의 작은 선박만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했지만 이제 1만 4000TEU의 초대형선박이 운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형 선박을 갖춘 해운사들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대상선 (15,850원 ▼170 -1.06%)이 용선료 협상에 성공하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해왔다. 산은이 출자전환해서 부채비율을 확 낮추고, 1조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서 지원해주면 당장이라도 현대상선이 우량기업으로 변신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금의 해운 경기는 정부나 채권단의 생각만큼 녹록치가 않다. 더구나 연이은 해운경기 악화에 앞뒤 안가리고 알짜 사업부와 컨테이너 박스까지 팔아치운 현대상선의 경쟁력이 금방 나아질리 만무하다. 그정도로 해서 나아질 해운업이라면 지금껏 그렇게 난리칠 이유가 없었다.

흔히들 구조조정은 타이밍의 싸움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상 한푼도 탕감 받은 것이 없는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당장 갚아야 할 채무는 잠시 미뤄진 것일 뿐이요, 조삼모사에 불과한 협상 결과로 눈가리고 아웅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 현대상선은 산은이 대주주인 공기업이 되고 말았고, 또다시 막대한 규모의 혈세 투입만 바라고 있다. 현대상선이 제2의 대우조선으로 전락하는 걸 막을 장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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