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가 매주 토요일 새벽 산에 오르는 이유

머니투데이 홍찬선 CMU유닛장 2016.06.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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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세상읽기]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희망일출산행

2016년 6월18일 월출산 천황봉에서 바라본 일출. 사진제공=강희갑 작가2016년 6월18일 월출산 천황봉에서 바라본 일출. 사진제공=강희갑 작가


2016년 6월18일 토요일 새벽 2시40분 월출산 입구 경포대.
해가 뜨려면 2시간 넘게 남아 있는 깜깜한 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잠자리에서 꿈꾸고 있을 시간에 12명의 남녀 건각(健脚)들은 천황봉(天皇峰)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전날 밤 10시에 서울 양재역을 출발해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이어서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전혀 피곤한 내색이 없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라는 강희갑 산악대장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일렬로 늘어선 헤드 랜턴 불빛은 희망을 전하는 천사처럼 정상을 향해 쉼 없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기를 100분,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좁쌀을 뿌려놓은 것처럼 쏟아지는 별과 푸른 은하수를 밀어내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하늘. 마침내 커다란 불덩이는 질긴 어둠의 끌어당김을 뿌리치고 동쪽 하늘에 불쑥 뛰어올랐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 없애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려는 듯이…

그들이 산에 오른다. 한두 번 오르는 게 아니다.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오른다. 그들이 오르는 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한국의 17개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새벽 산 오르기의 주인공은 네 남자. 사진작가인 강희갑 하이밸류컨설팅 전무, 뮤직스케치로 유명한 가수 김학민, 사회적 기부사업가 서우성 대표, 7년째 파킨슨병과 투병하면서도 더 어려운 환우를 위한 열정으로 산을 찾는 이돈하 대표가 그들이다. 이 네 남자는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뮤직스케치 김학민과 함께하는 국립공원 희망일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보다 좋은 시설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국립공원 희망일출산행을 이끌고 있는 강희갑 작가는 “2017년에 준공 예정인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승일희망재단과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일출사진을 전시해 그 판매수익금과 매주 1회 프로필 촬영을 한 후 촬영수익금을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올 1월 첫째 주부터 일출산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강 작가 혼자 산에 올랐다. 하지만 좋은 일은 외롭지 않은 법(덕불고, 德不孤). 2월27일 오대산 일출산행에 뮤직스케치 가수인 김학민 씨가 동참했고, 지인으로부터 일출 산행을 전해들은 서우성 대표께서 3월부터 합류했다. 3총사가 된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은 이돈하 대표. 네 남자로 늘어나면서 일반인 참여도 증가해 6월4일 경남 가야산에는 18명이 가세했다.


네 남자가 매주 토요일 새벽 산에 오르는 이유
특히 오는 7월16, 17일로 예정된 지리산 일출산행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를 희망해 성황을 이룰 예정이다. 1박2일 일정이어서 산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므로 장터목 대피소 예약 사정으로 인해 희망자가 모두 갈 수는 없지만 일사불란한 예약협조로 26명 정도는 갈 수 있을 예정이다.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천왕봉 일출로 17개 국립공원 일출산행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강 작가는 “17개 국립공원에서 일출촬영을 마무리하고 오는 9월에 사진전을 열어 판매 수익금 전액을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에 후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망일출산행은 최소한 일석오조의 효과가 있다.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도시에서 찌든 때를 씻어내고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며, 첫 해를 바라보는 감격을 함께 나누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닦는다. 또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후원하는 데 함께 한다는 뿌듯함도 있다. 게다가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바로 국립공원 정상에서 맛보는 ‘뮤직스케치 김학민 가수의 산상음악회’다.

김학민 가수는 “뮤직스케치 김학민과 함께하는 국립공원 희망일출’인만큼 산에 오르면서 그 산의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만든다”며 “태백산을 오르면 태백산에 맞는 노래를, 북한산을 오르면 북한산에 맞는 노래를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 공연한다”고 밝혔다.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음악을 만들어 선보인 뒤 이 노래와 기존의 노래를 CD로 담아 그 판매 수익금 역시 루게릭 병원 건립에 기부한다.

네 남자가 매주 토요일 새벽 산에 오르는 이유
이들의 희망일출산행은 이제 무등산(6월25일), 한라산(7월2, 3일), 주왕산(7월9일), 지리산(7월16, 17일), 가야산(7월23일), 속리산(7월30일) 등 6곳만 남겨뒀다. 장마철이 시작돼서 일정대로 일출 촬영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출사진 전시회를 위해 일출을 봐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끼면 다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라산(3월13일) 속리산(4월2일)과 가야산(6월4일)은 이미 갔지만 날씨가 흐려 일출을 찍지 못해 다시 가게 된다.

“금요일 저녁 때 약속이 많습니다. 하지만 밤 10시에는 희망일출산행을 떠나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날을 꼬박 새우고 산에 오르고 운전을 하다 고라니와 부딪치는 등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고생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서우성 대표).

“지난 3월26일 서우성 대표가 새벽 3시에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는 것을 페북에서 본 것을 계기로 희망일출산행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함께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한 달 동안 혼자서 새벽산행 연습을 한 뒤 5월부터 참여했습니다. 함께 산에 오르며 인생을 함께 가는 친구를 많이 만든 것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보너스입니다”(이돈하 대표)

토요일 새벽마다 어둠을 밝히며 산에 오르는 네 남자. 그들의 사진과 음악과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희망은 그들만이 아니라 사회로 퍼져 나가 우리의 희망이 되고 있다.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국립공원 희망일출 산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국립공원 희망일출(https://www.facebook.com/groups/exhibitionforhope)에 들어가서 참가신청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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