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부르는 정신질환, 학교에서도 보이지만…"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2016.05.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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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동의 없이는 치료 병행 불가능… 서울교육청 "학교장에게 격리 권한 줘야"

 시민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생면부지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피의자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로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진술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뉴스1 시민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생면부지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피의자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로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진술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뉴스1


#1. 서울 모 초등학교 5학년생 A군은 학교로부터 '강제전학' 조치를 받았다. A군이 같은 학년 친구 18명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폭행, 협박, 모욕, 상해 등을 행사했다는 이유에서다. A군의 강제전학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 벌써 다섯번째다.

학교 측의 조사에 따르면 A군은 하굣길에 B양의 머리에 돌을 던졌으며 아무 이유없이 C군의 얼굴과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과학실에 있는 실험 액체를 먹으려는 A군을 만류한 D양은 목이 졸릴 뻔 했다.



학교는 A군의 치료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A군의 어머니를 불러 가족상담을 받으라고 권했고 통합지원팀을 구성해 A군을 도울 방안을 협의했다. 학교폭력특수교육지원센터에 진단 의뢰서를 제출하려고도 시도했지만 A군의 어머니가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A군은 본인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내가 친구들을 괴롭힌 것은 E군이 시킨 짓이다" "담임선생님은 ○월○일에 내 목을 조르고 발로 내 목을 눌렀다" "E군이 수업시간에 가위를 들고 나를 겨누고 있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사건 조사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A군이 다녔던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강제전학을 당했으므로 A군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고 말했다.

#2. 서울 모 초등학교의 F교사는 4년 전 담임을 맡았던 G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6학년이었던 G군은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학생이었다. 공개 수업 시간에는 자신이 발표를 못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들 앞에서 연필을 부러뜨리며 화를 냈다. 일기장에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식의 온갖 잔인한 말이 적혀있었다. 과제물을 내라고하면 피를 뚝뚝 흘리는 시체를 그려내곤 했다. 가끔은 학급 쓰레기통에 담긴 쓰레기들을 몽땅 화장실에 버리고 오는 이상행동도 보였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G군은 2년 전 중학교에서 큰 사고를 저질렀다.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여학생의 신체에 가위를 꽂아 부상을 입혔다. F교사는 "G군의 문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지만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치료를 권하는 교사들에게 G군의 부모는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일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아이를 감싸며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의 치료, 격리방안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 학교가 치료나 등교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오가고 있다.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교 현장에는 다양한 문제학생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치료를 위해 학교가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치료를 진행하려면 학부모 동의가 필요한데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녀의 이상행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는 매년 학생정서행동발달선별검사를 통해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체크하지만 이것 역시 치료로 이어지려면 학부모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학부모들이 치료를 꺼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자녀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녀가 사회생활을 하며 정신병력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신병과 그 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학부모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특히 "의무 교육 기관이라 퇴학 조치가 없는 초·중학교에서는 문제 학생의 전학을 '폭탄 돌리기'로 인식하고 있다"며 "문제아가 치료를 받거나 학교를 떠나지 않는 이상 학내에서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교육부에 정서적 위험군 학생들을 학교장 권한으로 임시 등교 정지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건의한 시점은 지난해 9월 모 중학교에서 학생이 부탄가스로 학교 건물을 파손시킨 사건이 일어난 직후다.

전수민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현재 학교가 학생의 등교정지를 명할 수 있는 경우는 학칙위반이나 학교폭력 두 가지 경우뿐이므로 가해행위가 없는 학생에 대해 학교가 부모 동의 취할 수 있는 사전조치는 아무 것도 없다"며 "교육청에 학생정신건강위원회를 둬서 학생의 상태를 전문적으로 판단하고 학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치료를 위한 휴학 등을 결정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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