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커피트럭 인기 女사장, 어디 갔나 봤더니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6.05.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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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 인터뷰]간호사, 커피트럭 사장, 해외 여행가, 뮤직케어링 대표…'헬조선'에서 34세 여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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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던데, 카페트럭 관뒀나요?" 최근 우연히 오신애 사장(34)과 연락이 닿아 근황을 물었다.

"작년 말부터 강원도 양양에서 다른 사업하고 있어요 'cafe트빌리시'도 같이 하고요."

cafe트빌리시는 오 사장이 여의도에서 커피와 음료를 팔던 푸드트럭의 이름이다. 이국적인 여행 사진들이 붙어 있고 빈티지 인테리어에 생소한 이름의 카페트럭을 젊은 여자가 운영하다 보니 여의도 직장인들의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에 비슷한 푸드트럭이 많지만 대부분 남자들이 세련되게 개조하여 운영한다.



대학 졸업 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일탈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길어야 2주일이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일탈 본능은 깊어갔다. 8년이 지나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딱 1년만 놀아보자고 결단하고 우연히 알게 된 트빌리시(그루지아의 수도) 여행을 계획했다. 비상금 빼고 수중엔 500만원. 470만원으로 2002년식 중고트럭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수동 커피기계와 소품을 구입했다. 인테리어, 싱크대, 전기시설 등 모든 걸 직접 칠하고, 붙이고, 설치했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워낙 만들기를 좋아해서다(카페트럭을 직접 만드는 모든 과정이 그의 블로그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목표는 1년 내 여행 경비 500만원 모으기! 그런데 장소는?

여의도 증권가 앞에서 여의도 증권가 앞에서
◇ 여의도에서 '시즌1' 준비

"트럭을 꾸미면서 커피 한잔이 여유가 되고 힐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문득, 여의도 직장인들이 생각났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직장인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또 여의도 사람들은 커피 값 정도는 어렵지 않잖아요."


"놀려고 장사하는데 서민 자영업 카페 지역은 민폐를 끼치니 피해야죠. 여의도는 전부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가 몰려 있는 지역이라 넘치는 수요만으로도 적자는 안 날 것 같았어요. 구청 단속이 신경 쓰였지만 여의도는 도로가 여기저기 잘 나있어 도망 다니기도 좋습니다."

오 사장에게 여행 본능만 있는 게 아니라 상황과 여건을 분석하고 최적 해법을 찾아내는 사업 본능도 남다른 것 같았다. 목표가 뚜렷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재능도 같이 개발되나 보다.

실제로 여의도는 겉만 화려할 뿐 수시로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살벌한 지역이다. 금융시장과 직장의 생존 경쟁에 지친 여의도 사람들에겐 오 사장 같은 낙천적이고 활기에 찬 청년과의 힐링 소통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다.

물이 끓고 수동식으로 커피를 내리는 1~2분간의 짧지만 긴 휴식 같은 대화. 오 사장의 도전과 여행, 음악, 사진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평소 꿈꾸던 낭만에 대한 대리만족 그 자체였다.

하지만 스토리만으로는 단골을 만들 수 없다. 여의도 직장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품질에도 신경 썼다. 10군데의 원두를 직접 테이스팅하고 골랐다. 커피 맛이 최적 상태인 로스팅 2~3일 된 원두만을 소량씩 받아서 커피 맛을 유지했다.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한달 지나니 입소문을 탔는지 영화촬영장, 연예인 팬클럽 케이터링, 대학축제 등에도 불려 다녔죠. 나중엔 주식으로 좀 벌었다면서 여행경비에 보태라고 한 잔에 몇 만원씩 주고 가는 기분파들도 계셨어요."

젊은 여자가 낡고 무거운 카페트럭을 운영하며 치열하지만 즐겁게 사는 모습은 일상에 지쳐 메마른 여의도 직장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의도했든 아니든 감성 마케팅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성과는 기대보다 빨랐다. 지난해 4월말에 시작하여 9월쯤 목표했던 500만원을 모았고 3주간 트빌리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장사가 잘돼서 아까웠지만 여행이 우선 목적이라 미련 없이 떠났어요.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장사도 안 될 거고, 또 제가 여행 가는 지역이 우리나라랑 기후가 같아서 계절 좋을 때 가야 했어요."

그런데 당초 1년만 저지르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놀아보니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당찬(?) 생각이 들었다.

아르헨티나 기차역에서아르헨티나 기차역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트빌리시로 '시즌1'을 마무리하니 다시 예전처럼 직장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고정 수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것저것 찾다가 지자체들이 보건복지부 보조를 받아서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음악·정서 교육사업(뮤직케어링)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어릴 때부터 작은 학교 하나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느낌이 와 닿았어요. 커뮤니티 공간이 창출하는 긍정적인 힘과 에너지를 믿고 있었는데 그 공간을 직접 만들어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뮤직케어링 사업은 미래의 꿈과 지금의 고정수입 목적에 딱 맞았어요."

사실 오 사장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제72기(2012년)다. 간호사로 방글라데시에서 2년 이상 근무할 예정이었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됐다. 그 아쉬움이 뮤직케어링사업으로 이끌었다.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같이 일할 뜻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장소였다.

"강원도 양양은 10~20분이면 산·들·바다·계곡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죠. 공항도 있고, 내년에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서울에서 1시간 반 거리밖에 안돼요. 이보다 지리적으로 완벽한 곳은 없죠. 갈수록 황사나 미세먼지가 더 심해질 텐데 여기 지형은 이것까지 막아줍니다. 요즘 서핑이 뜨고 있는데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지역이기도 하고요."

오 사장은 야간등반과 비박을 마다 않는 등산광에다 자전거로 서울~부산을 4일 만에 주파하는 스포츠맨이다. 산과 바다가 있고 사람, 특히 아이들이 있는 곳... '양양'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월에 양양으로 이주하고 5개월밖에 안됐지만 오 사장의 열정과 해피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졌는지 양양군 SNS 홍보기자단으로 위촉됐고, 강원도 한 중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지금은 양양군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도 예정돼 있다.

"그냥 놀았을 뿐인데, 그것도 강의가 되나 봐요. 인생의 무대를 즐기고 여행한 걸로 돈도 벌다니 감사할 따름이죠."

◇ '시즌2'를 꿈꾸며

오 사장의 저지르고 도전하며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도전과 열정도 한때 아니던가? 해마다 늘어나는 실업률과 고령인구 증가로 모두가 미래의 경제적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준비할 겁니다. 돈 말고 사람 말이죠. 돈 버는 건 자신 없지만 사람 버는 건 자신 있어요. 돈은 시간이 지나면 써서 없어지는데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더라고요. 이분들이 전부 저의 재산입니다. 물론 저도 그들의 재산이죠."

쓸데없는 질문을 했나 싶었다.

오 사장은 현재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이번엔 모론다바(마다가스카르). 'cafe트빌리시' 이름도 'cafe모론다바'로 바꿔야 한다. 자질구레한 소품들도 바꿔야 하는데 구청 단속 때 기동성을 높이려고 실리콘으로 다 붙여 버려서 고민이다(푸드트럭은 2014년 7월부터 합법화 규정이 마련됐지만 워낙 까다로워 대부분 불법이다. 2월말 기준 전국의 합법 푸드트럭은 고작 93대뿐이다).

"여행경비를 모으려면 또다시 여의도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들리는 소식에 제 자리에 다른 분이 자리잡고 있다니 다른 장소를 알아 봐야죠. 제 단골들도 빨리 보고 싶고요."

많이 벌지 못해서 그렇지 돈 버는 자체에 걱정은 없어 보였다. 오 사장 본인도 자신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삶을 이끌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청년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헬조선'에서 오 사장이 사는 모습을 보면 자신감과 도전정신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신애 사장(34)은 경북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와 경북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아산병원에서 8년간 간호사 생활을 했다. 여의도에서 카페트럭을 운영했고 지금은 강원도 양양군이 운영하는 뮤직케어링사업의 대표로 있다. 40개국을 여행했고 현재 바오밥나무가 있는 마다가스카르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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