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저녁 자리에서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격하게 토로한 말이다. 그는 조만간 지난 3년간 맡았던 산업통상자원부 R&D(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 자리를 내려놓는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수이자 캠퍼스창업을 통해 코스닥상장사 에스엔유프리시젼을 키워낸 기업인, 여기에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로 한국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R&D전략기획단장까지 ‘1인 3역’ 속에서도 늘 웃음과 여유가 넘쳤던 그였다.
무엇이 그에게 안타까움과 자책감을 심어주었을까. 아마도 그의 많은 노력에도 이 땅의 중소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와 벽은 3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게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안팎의 국가에서, 인공지능(AI)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나라에서 현재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들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그 케케묵은 관념 속에서 말이다.
‘대마도 두 집을 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게 엄연한 현실의 법칙이다. 대마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340만개 중소기업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경제에서 일자리의 90%를 책임지는 것이 중소기업들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 10명 중 9명은 중소기업 종사자들이다. 중소기업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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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소기업 육성의 방향은 명확하다. 박 교수가 말한 대로 기술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시장진출로 요약된다. 국내 중소기업의 R&D집약도(R&D투자/매출액)는 1.25%에 불과하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6%에는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다. 국내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은 겨우 2.6%인 9만여개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에 한국경제의 위기 탈출과 재도약이 달려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을 위한 무수한 정책과 지원방안들이 등장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역시 실천이다. 기존처럼 작다고 무시하거나 기득권의 압력에 밀려서는 안된다. 그래야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의 강한 '중마'로 커나갈 씨앗들이 뿌려진다. 박 교수의 한마디는 아직도 여운을 남긴다. ‘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