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야신' 김성근, '차르' 김종인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6.03.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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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양날의 칼' 김성근·김종인, 탁월한 능력 vs 통제불능 성향 '딜레마'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사진=뉴스1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사진=뉴스1


한때 프로야구단들 사이엔 암묵적인 '신사협정'이 있었다. 김성근 감독을 쓰지 않는다는 약속. 2011년 김 감독이 SK를 떠난 뒤 3년 간 지켜켰던 이 협정은 2014년 한화가 김 감독을 전격 영입하면서 깨졌다.

'야신'(야구의 신) 김 감독은 구단들에게 '독배'와도 같다.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약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 팀 운영에 대해 사실상 전권을 요구하는 김 감독의 스타일 탓에 구단 프런트는 사실상 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지독하게 승리만 추구하는 스타일 때문에 구단의 승률은 올라가지만 그만큼 호감도는 떨어진다.



2007∼2010년 'SK 왕조'(한국시리즈 3회 우승) 시절이 그랬다. 그는 일부 SK 팬들에겐 '영웅'이었지만 나머지 야구팬들에겐 '악몽'이었고 프런트에겐 '고통'이었다. 그가 구단과의 마찰 끝에 SK가 떠난 것도, 다른 구단들이 김 감독을 기피한 것도 그래서였다.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성적에 따라 좌우된다. 한화가 '마약야구'를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킨 지난해 시즌 중반까지 대다수 한화 팬들에게 '김성근표 야구'는 진리였다.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 '필승조' 불펜투수들을 혹사시킨다는 논란도, 큰 점수 차로 앞설 때 도루를 하는 등 야구의 '불문율'을 어긴다는 비판도 김 감독이 이끈 '마리한화'(마리화나 같은 한화 야구) 열풍에 묻혔다.



그러나 시즌 종반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일부 한화 팬들조차 김 감독에게서 등을 돌렸다. 팬들은 선수들의 체력을 도외시한 혹독한 훈련, 투수의 자존심을 외면한 '벌떼야구'(불펜투수 대량투입)를 성토했다. 이들은 "사랑받는 야구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일구입혼'(一球入魂)의 일본식 '야구도(道)'가 체화된 김 감독이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화가 마주한 '김성근 딜레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사진=뉴스1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딜레마'에 빠져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 파동은 그가 왜 '차르'(러시아 전제군주)로 불리는 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당 중앙위원회가 '노욕'이라며 셀프공천에 반발하자 김 대표는 사퇴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비대위 해체 직전까지 갔던 위기는 당의 양보로 수습됐다. 김 대표는 처음 원했던대로 비례대표 2번을 받고 사퇴 의사를 거둬들였다.

김 대표는 정치권에서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선거 때 중도층 공략에 특효인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면서 노회한 정무적 감각의 소유자다. 이달초 '야권통합'을 전격 제안해 국민의당을 분당 직전까지 몰고가며 총선을 양당 구도로 돌려놨을 땐 '갓종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반대편 칼날도 있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12년 총선·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조차 그에게 제동을 걸지 못했다. 브레이크 없는 김 대표의 독주에 더민주 내부에선 "당의 영혼까지 팔려나갔다"는 탄식이 나온다.

야신과 차르는 적잖이 닮아있다. 야신은 이기는 야구, 차르는 이기는 정치를 한다. 기존의 관행에 맞서고, 강력한 신념과 카리스마로 조직을 뿌리째 바꿔놓는다. 전형적인 '혁신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제어할 수가 없다. 전문경영인이지만 대주주도 이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지지자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긴다. 사랑받는 야구, 사랑받는 정치는 이들의 관심 밖이다.

다른 점도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특타'(특별 타격훈련) 등 추가 훈련을 시킬 땐 이유를 설명해준다. 팬들은 몰라도 선수들은 김 감독을 이해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례대표 2번을 고집하면서 단 한번도 제대로 이유를 설명한 적이 없다. 당을 이끌기 위해선 의원직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 그게 왜 꼭 2번이어야 하는 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번을 하든 10번을 하든 15번을 하든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만 했을 뿐이다.

조지 맥거번은 1972년 미국 민주당에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제도를 도입하는 등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개혁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개혁 추진 과정에서 그는 독단적인 태도로 대의원들을 적으로 돌렸다. 그로 인해 당은 분열됐고, 그해 대선에서 맥거번은 공화당 리처드 닉슨에게 참패했다.

김 대표는 '당의 승리'가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더민주가 개혁없이 승리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개혁이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소통없는 차르식 개혁이라면 더욱 그렇다. 선택은 차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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