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 총보.
작정하고 알파고의 약점을 파고든 이세돌 9단이 첫 승리를 거뒀다. 도전자의 자세로 나선 이 9단이 알파고의 단점을 드디어 찾아낸 것. 경기 초반부터 대국을 복잡하게 비튼 이 9단의 전략적 승리다.
이 9단이 4경기 만에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대국장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인류'가 AI를 이겼다는 자축의 박수였다. '기적'이라는 표현도 흘러나왔다.
3국까지 이 9단이 모두 패하며, 입장은 바뀌었다. 인간은 도전자가 됐다. 1주일 만에 알파고는 인간이 도전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추앙받게 됐고, 알파고의 '실수'조차도 추후를 내다본 '인간이 볼 수 없는 묘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직접 알파고와 대국해 본 이 9단의 생각은 달랐다. 3연패를 한 뒤 열린 간담회에서 이 9단은 "아직 알파고의 실력이 바둑계 전체에 메시지를 던질 만큼은 아니다"며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으로 보면 안 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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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국에서 이 9단은 그 이유를 몸소 보여줬다. 그는 대국 초반부터 철저히 알파고의 다음 수를 계산해서 자신의 착점을 이어갔다. 해설진에서는 "이 9단이 너무 알파고를 의식하는 것 아니냐", "너무 당해주는 것 같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이 9단의 대응은 일관됐다.
흑71로 흑이 상변에 큰 집을 형성하자 또 다시 비관론이 나왔다. 이 9단 입장으로서는 뾰족한 승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대목이었다.
기보=사이버오로, 한국기원
대국 후 인터뷰에서 이 9단 역시 "그 곳 외에는 둘 곳이 없어서 놓을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수"라고 평가했다.
이후 알파고는 '버그'에 가까운 실수를 수차례 범했다. 지난 1~3국에서 볼 수 없었던 '악수'였다. 이 9단의 백78이 결과적으로 인간 고수 간의 대국에서 먹히는 수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창의적인 수로 대국을 어지럽게 만든 이 9단의 전략이 알파고의 오류를 만들어낸 것. 거듭된 악수로 이 9단은 상변의 흑집을 모두 깨부쉈고 결국 4국을 승리로 가져갔다.
경기 후 구글 딥마인드 팀의 데이비드 실버는 "알파고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여러 대국을 반복해 축적한 지식은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알파고의 단점이 드디어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도 이 9단과 대국을 펼친 이유가 "이 9단이 갖고 있는 천재성과 창의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파고에 승리를 거두고 환하게 웃는 이세돌 9단/사진=이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