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여전한 '갑질'논란…건설현장의 '갑'에 법적대응하려면

머니투데이 전선애 변호사 2016.03.1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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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애 변호사.전선애 변호사.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공천 결과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갑질논란'에 연루됐던 인사들이 명단에 포함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단 정치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최근 모 임원의 삼청각 무전취식 논란부터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대기업의 갑질, 교수의 학생에 대한 갑질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이 만연하다.

'갑'의 횡포는 건설현장에서도 확인된다.
몇 해 전 가을, 한 중소건설사인 A업체의 담당자들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당시 서울시 S구에서 발주한 공사를 수주해 진행 중이던 A사는 발주처로부터 "교통혼잡을 해소해야 하니 작업시간을 단축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통보대로 작업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이자 시공효율이 급격히 저하됐다. 공사기간이 1년 넘게 길어지고 그만큼 인건비와 장비 비용이 늘어 순손실만 10억원이 넘었다. 급기야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발주처 담당자들은 추가 공사비 지급을 약속하며 우선 시공을 마치라고 지시했다. A사는 이 약속을 믿었지만 막상 공사를 마치자 발주처는 태도를 바꿨다. 유사한 전례가 없으니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추가공사비를 반영한 계약서가 있나요" "추가공사비를 지급하겠다는 발주처 회신이나 공문이 있나요" "설계변경은 이뤄졌나요" 소송 과정에서 발주처의 부당함을 입증하고 A사에 유리하게 쓰일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위 질문들에 돌아오는 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발주처가 앞서 약속했던 추가 공사비 지급에 대해 서면으로 남겨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중소건설사가 발주처로부터 공사를 수주받거나 원사업자인 대기업으로부터 이를 하도급 받을 때 중소건설사는 발주처나 원사업자의 갑질에 휘둘리기 쉽다. 계약체결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에서 중소건설사는 '을'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주처나 원사업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고 공사가 지체되면 지체상금약정까지 물어줘야 한다. 발주처나 원사업자가 기성고 지급을 미루거나 수주처인 건설사에 불리한 조건의 확인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때 기성고를 지급받는 것이 중요한 중소건설사의 경우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기성고를 포기하는 일도 잦다. 그러다 파산에 이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발주처나 원사업자인 대기업은 자체 법무팀과 자문변호사의 호위를 받는 '갑'이다. 반면 '을'인 중소건설사들은 소송 직전에야 빈약한 증거들을 들고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이렇듯 불리한 상황에서 A사는 발주처를 상대로 추가 공사비용 지급 청구 소송을 냈다. A사는 소송 과정에서 설계 변경 사유가 작업 조건 변경인 점을 입증하고, 계약대금 조정 신청 과정에서 추가 공사비 지급 요청 공문들을 근거로 활용했다. 당시 시공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돼 할증률 209%를 인정받았다. 아직 우리나라 판례에는 간접설계변경이나 묵시적 승인 등의 논의가 부족하지만 공사계약 일반조건 등의 규정은 비교적 견고하게 구성돼 있다.


A사는 결국 소송을 통해 2배 할증률의 추가공사비, 연 17%의 약정이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A사가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발주처에 수차례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오는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 억울함을 법정에서 입증해야만 한다. 결국 어떤 법리와 증거를 근거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억울함이 해소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갑의 횡포로부터 권리를 지켜내려면 계약서에 의해 적용되는 공사계약 일반조건 등 계약내용을 사전에 잘 숙지하고, 계약과 시공 과정에서 발주처나 원사업자와의 다툼이 있는 경우 문서를 통해 증거를 남겨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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