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 화가 김영수씨. /사진=박진하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김씨는 '공간'의 신입사원으로 뽑혔다. 김씨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설계로 바쁜 설계 2팀에 배속됐다. 하지만 다른 신입사원처럼 움직이기 힘들었다. 김씨는 뛰지 못했고, 앉은 자리서 일어나려면 손으로 무릎을 꾹 짚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하지만 김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아침마다 서울 보라매병원 인근 작업실로 온다.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리는 그림, ‘구필화’(口筆畵)를 그리기 위해서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도심 산동네를 묘사한 '시티 스토리'라는 그림으로 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김영수씨가 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시티 스토리'. /사진제공=김영수
김씨는 그림을 그릴 때 물감과 미디엄(매제) 등을 섞어 캔버스 위를 두텁게 바르고 나서 대나무 젓가락으로 드로잉을 남기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하면 화면을 깊게 파고 들어간 선이 남는다. 김씨는 "청자의 상감기법을 응용해 봤다"고 했다. 그 선은 달동네 등 서민들의 생활 공간을 묘사한다.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달동네와 그 곁 쓸쓸한 나무들을 묘사한 선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장애인 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인 '시티 스토리'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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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와 같은 작품 외에도 1990년대 이후 추상·구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향해 나갔다. 정부가 지원하는 도우미는 김씨 구필화 작업을 위한 주변 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씨는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조그만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비록 그 빛이 작을지라도 당신의 몸을 밝게 해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씨는 본격적인 그림에 도전한 이듬해 3세 연하의 간호사 아내를 맞았다. 현재는 대학 1학년생인 딸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