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임성기 회장의 삼귀선(三貴宣)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2016.0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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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임성기 약국’이란 상호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9년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중 고향인 청주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전학온 학교가 상계동 불암산 중턱에 있는 학교이다보니 신설동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했다. 종로 5가를 지나치며 본 약국 상호가 이채로웠던 것은 당시엔 점주 이름을 앞에 건 상호를 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신설동 전신주에 붙은 약국 광고지엔 ‘매독’이니 ‘임질’이니 하는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사춘기 남학생의 눈에는 쏙쏙 들어오지만 당시로선 어쩐지 공개적이기엔 꺼려지는 문구들이. 어쨌거나 이름을 내건 상호도 그렇고 성병치료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광고도 당시로선 희귀한 일이었다.

약국주인으로만 알았던 임성기씨가 한미약품 대표라는 사실은 90년대초에 알았다. 초판을 막고 여유시간에 이 신문 저 신문을 뒤적이던 중 어느 기사에선가 한미약품이란 회사가 주 5일 근무를 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주 5일? 그럼 이틀이나 논다고?’ 싶어 보니 그 대표가 약사 출신 임성기씨란다. ‘혹시 그 임성기씨?’ 싶어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동일인이었다. 토요일이 여전히 반공일이던 시절 ‘주 5일 근무’라는 근무환경은 꿈처럼 희귀한 일이었다.



해가 바뀐 병신년 벽두에 한미약품, 그리고 임성기 회장은 또 한가지 희귀한 소식을 전했다. 회장 개인 주식 1100억원어치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나눠준다는. 한미약품이 총 8조원규모의 신약후보물질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는 기사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놀라운 기사였다. 경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축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 기업문화에서 이같은 일이 생길수도 있다니 정말로 희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한테 선물받은 일제강점기시대 개벽사의 잡지 ‘별건곤(別乾坤)’을 살펴보던중 만화경(萬華鏡)이란 단신 기사 모음에서 ‘홍명희씨가(洪命憙氏家)의 삼귀도(三貴盜)’란 기사를 발견했다. 1932년 무렵이니 한자까지 같은 기사속 홍명희는 ‘임꺽정(林巨正)’을 쓴 벽초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끌었다.



“..가난뱅이 문사의 집에 도적이 들었다면 누구나 괴이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로 홍명희씨 집에는 요전에 도적이 들어서 백원짜리 담요를 강탈하여 갔는데 범인은 모 고등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순사시험에 입격까지 된 사람으로 생활이 너무 곤란한 까닭에 그런 범행을 하얏다고 한다. 빈한한 문사의 집에 도적이 든 것도 희귀한 일이거니와 빈한한 문사가 백원짜리 담요를 가진 것도 또한 희귀한 것이고 고등학교출신에 순사지원자로 강도질하는 것도 또한 희귀한 일이다. 이런 도난을 이름하면 삼귀도(三貴盜)라고나 할까.” 기사중 ‘백원짜리 담요’는 같은 책 앞선 ‘시골학생 상경기’ 기사상에서 전차값이 5전이라 한 대목에 비추어 확실히 가난뱅이 문사집에 어울리지않는 꽤나 비싼 담요이긴 하겠다싶다.

엄밀히 말하면 한미약품의 주식나눔 기사를 먼저 접했고 다음으로 별건곤을 읽었으며 희귀하다는 점에 착안, 이 글을 쓰는 셈이다.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은 엄격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말못할 고민을 안고있던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병치료제를 베풀었다. 주 5일제근무는 1973년 삼아약품에서 처음 실시했다는 기사를 보았으니 한미약품이 선두기업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2003년 8월 들어서야 주5일 근무제 시행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그 이후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음을 돌이켜보면 기업주로서 선제적으로 고용인들에게 삶의 여유를 베풀었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엔 사재 1100억원을 직원들에게 분배했다.


‘홍명희씨가의 삼귀도’에 빗대자면 ‘임성기 회장의 세가지 희귀한 베풂, 삼귀선(三貴宣)’쯤 될 법하다. 임성기 회장의 이번 베풂은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의 눈과 귀에도 기분좋은 선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속마음으로는 또다른 베풂의 마중물이 되기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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