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든 지도 한 장으로 재난 이기고 사회 바꾼다

머니투데이 테크M 박상은 인턴기자 2016.01.1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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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의 힘, 커뮤니티 매핑의 세계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 경로와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지도 위에 표기한 ‘메르스맵’ 웹사이트의 방문자가 500만 명을 넘었다. 보건당국이 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메르스맵은 340여 건의 자발적 제보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집단지성을 이용한 커뮤니티 매핑(Community Mapping)의 한 사례다.

커뮤니티 매핑은 집단이 주체가 돼 정보에 대한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오프라인의 정보 전달속도와 정확성의 한계를 온라인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과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 매핑은 최근 위성측위시스템(GPS)이 장착된 모바일 기기가 보편화하고 개방형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통해 지도업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더 활발해지고 있다.

커뮤니티 매핑의 사례는 다양하다. 스와힐리어로 증거를 뜻하는 ‘우샤히디(Ushahidi)’는 2007년 케냐의 대통령 부정선거 이후 정치적 폭력이 심해지자 생긴 웹사이트다. 당시 변호사이자 블로거인 오리 오콜로에게 수많은 사람이 폭력사건을 제보했고, 그녀는 이를 취합해 온라인 지도에 표시했다. 언론마저 통제되던 당시 우샤히디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우샤히디는 이후 다양한 정보를 지도에 표기하는 재난 관리 오픈소스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허리케인 ‘샌디’ 때 주유소 지도 각광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커뮤니티 매핑은 빛을 발한다. 2012년 10월 미국 뉴욕과 뉴저지 부근을 허리케인 ‘샌디’가 휩쓸고 지나갔다. 정전으로 많은 주유소의 기름이 떨어지자 일대엔 기름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때 전기차 충전소, 정전된 주유소, 기름이 떨어진 주유소, 영업 중인 주유소를 다른 색깔로 표기한 지도가 등장했다. 이 ‘주유소 현황 지도’ 덕분에 사람들은 기름을 구하기 위해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미국 에너지국 콜센터도 이를 적극 활용했다.

주유소 현황 지도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는 한국인 임완수 박사다. 그는 당시 커뮤니티 매핑 활동을 함께 해오던 학생들과 구역을 나눠 주유소에 기름이 있는지 확인해 지도에 표시했다. 어느 언론사도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임완수 박사가 개발한 주유소 현황 정보 시스템임완수 박사가 개발한 주유소 현황 정보 시스템


임완수 박사는 뉴저지주 럿거스대학 그랜트 월터 리모트센싱 및 공간분석 센터의 객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공공 참여형, 상호교류 웹 기반 GIS를 활용한 의사결정시스템 개발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임 박사는 한국의 커뮤니티 매핑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다양한 워크숍과 강연 등으로 커뮤니티 매핑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그러던 중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껴 2013년 커뮤니티 매핑센터를 만들어 더 체계적인 커뮤니티 매핑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강북구와 커뮤니티 매핑센터가 진행한 자동 심장충격기 커뮤니티매핑 프로젝트서울시 강북구와 커뮤니티 매핑센터가 진행한 자동 심장충격기 커뮤니티매핑 프로젝트
커뮤니티 매핑센터는 최근 다음 스토리 펀딩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를 연재한 홍윤희 씨와 장애인 이동수단에 관한 커뮤니티 매핑을 진행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턱이 높은 지하철역이 많아 휠체어를 타는 딸 지민이와 외출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는 홍씨와 함께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았다.
함께한 고등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다녀보며, 갈 수 있는 경로는 지하철 출구와 내부 사진에 선을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는 추후 지도에 표기돼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지도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처럼 취지에 공감하는 모두의 의견이 단 한 장의 지도에 담길 때 그 힘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커뮤니티 매핑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변화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인터뷰]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 프로젝트 진행한 홍윤희 씨
함께 만든 지도 한 장으로 재난 이기고 사회 바꾼다
“아이가 지하철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편리하게 사용하는 발’로 알았으면 좋겠다.”

다음 스토리 펀딩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를 2015년 9월 30일부터 92일간 진행한 홍윤희 씨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지민이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다. 지민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지민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기도 하면서 남들은 40분이면 가는 곳을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하곤 했다.

홍 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안내만 제대로 돼 있어도 괜찮을 텐데’라고 생각했다”며 “리프트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휠체어로 환승할 수 있는 방향은 어디인지,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정도만 알아도 이렇게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씨의 프로젝트에 반응한 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뿐만이 아니었다. 유모차를 끌거나, 잠깐이나마 목발을 짚어봤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모시고 나갔던 사람들까지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또 지도 디자인을 돕겠다는 사용자 경험(UX) 전문가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후 장애인을 위한 여행가이드북을 낸 대학생 김건호 씨, 그리고 커뮤니티 매핑 전문가 임완수 박사 등 많은 이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다. 모두 주제에 공감하고 지도의 필요성을 느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지도가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홍 씨는 “장애인에게 편한 시설은 모두에게 편한 시설”이라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 장애인들의 시위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노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이용하고 있다. 지도가 완성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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