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인천은 이런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완벽한 도시 중 하나다. 특히 동인천이라 불리는 곳은 더욱 그렇다. 인천의 첫 번째 중심이었을 이곳에는 아직까지도 오래된 공간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 눈길 가는 곳이 바로 배다리다.
실제로 개항 이후 몰려온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배다리 일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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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의 입구에는 민트색 일본식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조흥상회다. 내걸린 간판만 해도 다섯 개가 넘는 복잡 미묘한 이 100평짜리 공간에 들어가 보니, 한명의 여인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일까.
조흥상회는 1920~1930년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찍은 사진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건물이다. 참고로 지금과는 건물양식이 다르며, 6.25때는 폭격을 맞아서 골격만 둔 채 다른 모습의 건물로 변화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건물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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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상회는 당시 제수 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조흥상회의 아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거실에 상들이 쭉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지방에서 납품을 하려고 온 사람들을 대접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이 곧 배다리의 지주가 살던 집이었던 것이다.
그런 곳이 집안의 몰락과 함께 아무도 살지 않는 쓰레기더미 집이 되었다. 현재 이곳의 주인인 청산별곡(본명 권은숙)이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코를 막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둘러보다보니 쓰레기 대신 일본식 천정이나 가구, 소품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이 오래되고 낡은 공간과 물건들에 다시 숨을 불어 넣어주기로 결심한다.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그녀는 말한다. "저는 틀에 갇히는 게 싫어요. 좀 더디지만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어요. 혼자 있으면서도 계속 생각을 해요. 이렇게 하면 재밌겠다 저렇게 하면 재밌겠다. 또 혼자 하니까 결단도 빨라요.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탁자위치도 어제 새로 바꾼 거예요. 흘러야 하잖아요. 고이면 안돼요."
/사진제공=김은혜 칼럼니스트
방치된 공간, 오래된 공간을 다시보고 살리는 것.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 느리지만 하고 싶은 것에 계속 도전해보는 것. 약간은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그녀의 삶 속에서 '상회'라는 뒤쳐진 공간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남은 오랜 것들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이길. 썩지 않고 손 때 묻은 정겨운 것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