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폐지 유예는 '희망의 엘리베이터' 욕심?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5.12.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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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아직도 사시를 신분상승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된 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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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난 3일 법무부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폐지하기로 하였던 사법시험 제도를 2021년까지 4년간 더 유지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해 찬반양론이 들끓고 있다.

이는 사시폐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4년 후 정책담당자에게 책임을 미루겠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정책 보신주의이자 복지부동의 자세이다.



사법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도입과 더불어 7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폐지하기로 하였다. 이미 법조인력이 국제화, 다양화를 목표로 로스쿨을 도입하여 양성되고 있는 마당에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는데도 사시존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아직도 사시를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집안의 사람들이 소득을 늘리고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사시 존치 주장이 단지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라 한 순간 높은 층으로 고속이동하고 싶은 ‘희망의 엘리베이터’라는 욕심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묻고 싶다.



이미 사회 내 대부분의 직업들은 추가적 이득인 렌트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50대 초반이면 퇴직을 고민할 정도로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힘든 것이 요즘 세태이다.

변호사업계도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평생 은퇴 없는 자격증이라는 황금티켓을 거머쥐고는 있지만, 예전같이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앉아서 의뢰인을 받던 시절은 지나고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법률서비스를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체제가 온 것이다.

올해 초 신림동 복사집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학원에서 발행한 교재를 복사집에서 무단으로 복사하여 팔다가 줄줄이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200~300만원씩 합의금을 주고 해결을 보았지만 예전에는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했던 문제였다. 그러나 사시를 준비하는 인원이 줄고 수험가도 썰렁해져 수익이 줄어들다 보니 신림동 수험가를 잘 아는 사시출신 변호사가 학원을 통해 고소를 진행했다는 소문이다. 그만큼 변호사 하기도 힘든 세상이 온 것이다.


또한 사법시험은 가난한 집 자식이 학비 부담없이 공부만 잘해서 쉽게 합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로스쿨의 평균 1년 학비 1,500만원에 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청년들의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커진 시험이 됐다.

수험생들은 좁은 시야로 1년이라도 더 수험기간을 연장하면 합격의 기회가 있을거라는 터널링(Tunneling)의 오류에 빠져 있지만 평균 합격기간 5년인 시험에서 7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으면 줄 만큼 다 준 셈이고 할 만큼 다 한 셈이다.



사법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로스쿨의 경우 3년 학업을 마치면 합격률이 75% 내외인데 반해, 사시는 평균합격기간이 5년 가까이 되며 1차 시험 기준 합격률이 3% 정도라는 것이다. 2015년 57회 사법시험은 총 6,182명이 1차 시험에 지원해 최종합격자는 불과 153명이다.

결국 나머지 불합격자 97% 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계속 잠재적 실업군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게다가 수험기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수험생활을 포기하고 사회에 진출하기도 어려워진다.

취업준비에 전력을 다한 대학 졸업자들도 회사 들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겨우 토익 700점만 넘기면 되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취업준비를 하게 되면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고시낭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사시는 온전히 본인과 부모의 돈으로 전부 그 수험생활 동안 비용을 충당해야 하며 수험생은 무적자(無籍者) 신세이다. 굳이 실업률을 따질 때 통계상의 수치에 더해 잠재적 실업군까지 포함하여 청년실업이 큰 문제라고 핏대를 세우면서, 사법시험 존치 주장에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수험생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

그동안 합격인원을 서서히 줄이면서 불합격한 사시준비생들이 사회진입에 연착륙하고 있었으나, 4년간의 사법시험 유예는 청년실업군을 4년간 더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법시험이 4년 연기 후 ‘절망의 굴다리’가 되지 않도록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 4년 뒤에는 어느 당국자가 또 짐을 져야 한다. 그 때도 합격 못한 수험생은 여전히 많이 존재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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