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맞으며 먼 길 떠난 '巨山'…국민 곁에 잠들다

머니투데이 박경담 김성휘 최경민 기자 2015.11.2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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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반세기 정치 역정 고스란히 묻어난 상도동·국회 거쳐 현충원에 안장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5.11.26/뉴스1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5.11.26/뉴스1


한국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26일 서울 도심에 내린 올해 첫 눈을 맞으며 88년 간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이날 오전 빈소를 떠나 국회와 상도동을 거쳐 현충원에 도착할 때까지 김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야 하는 가족·동료 정치인·국민들의 애통함이 곳곳에서 번졌다.

◇"민주주의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데…"눈물 번진 빈소
이날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당 강당에서 열린 발인예배에서 유족들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김 전 대통령 가족과 측근 인사 100여 명이 지켜본 가운데 진행된 예배에선 김 전 대통령 어록인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을 주제로 한 설교 로 예배가 집전됐다.



상주인 차남 현철 씨는 가족 대표 인사를 통해 "오늘 날씨가 매섭다. 이 추운 날 왜 하느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려 하시나 생각했지만 여기에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주의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급한 시점에 아버님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라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한다. 이제 모두가 각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여동생 두선 씨는 김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우리 오빠 보고 싶어. 오빠 사랑해. 우리 오빠 어떡해"라며 오열했다. YS의 '좌형우'라고도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도 김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눈물이 고인 채 고인을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을 향해 3번 고개 숙여 예우를 표한 뒤 현철 씨를 마주한 최 전 장관은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5.11.26/뉴스1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5.11.26/뉴스1
◇박 대통령, YS 운구 행렬 배웅
김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이날 오후 1시 20분쯤 영결식 장소인 서울 여의도 국회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 대형 영정 사진이 세워진 뚜껑 없는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필두로 김 전 대통령 운구차와 유족들을 태운 버스 7대가 경찰 에스코트를 받으며 뒤따라 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장례식장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박 대통령은 운구 행렬이 장례식장을 출발하기 전 서울대병원을 방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함께 운구 출발을 지켜봤다. 까만 양장 차림의 박 대통령은 운구차 옆에 서 김 전 대통령 장손 성민 씨가 양 손으로 받친 김 전 대통령 영정 사진과 국군 의장대가 든 관을 맞이했다.

김 전 대통령 관이 운구차에 들어간 뒤 박 대통령은 현철 씨와 목례 인사를 하고 김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이자 유족 측 대표 격인 김봉조 전 의원,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청와대 수행실장 등과 악수를 했다. 박 대통령은 약 7분 가량 김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 퇴장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마당에서 거행 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6/뉴스1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마당에서 거행 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6/뉴스1
◇서설 속 엄수된 국회 영결식
평생을 '의회주의자'로서 살아온 김 전 대통령 생애에 걸맞게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김 전 대통령 부인인 손명순 여사와 국가장 5일 동안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장남 은철 씨를 비롯한 유족과 장례위원, 각계 주요 인사 등 1만 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추도사를 맡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회고해 보면 실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다"며 "머지않아 저희 모두 대통령님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겠지만 후배 동지들이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세우고, 대통령님께서 염원하시던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 날을 반드시 실현해 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한다"며 김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했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사가 낭독되는 동안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기도 했으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자 고개를 숙이는 등 감정을 추스렸다. 국가장이 치러지는 내내 침착함을 유지했던 현철 씨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나타나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손수건을 눈에 대고 입을 꽉 다물었으나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열린 26일 고 김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행렬이 서울 상도동 사저를 떠나고 있다.2015.11.26/뉴스1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열린 26일 고 김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행렬이 서울 상도동 사저를 떠나고 있다.2015.11.26/뉴스1
◇상도동 거쳐 현충원에 안장

80분에 걸친 영결식을 마친 뒤 김 대통령 운구 행렬은 상도동 사저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과 희노애락을 함께 한 이웃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사저 골목길로 들어서자 흐느끼며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는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직후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이다. 아울러 이 곳은 김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들과 주요 현안 등을 논의하며 이른바 상도동계라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하는 등 고인의 정치 인생과 함께해 왔다.

김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현충원이었다.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불과 300 미터 떨어진 곳에 안장된 김 전 대통령은, 유족들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한 선후배 정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장대의 조총 소리에 묻혀 국민들 마음 속에 영원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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