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윤일병 사건' 겪고도…'군 인권법' 반대하는 軍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5.11.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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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軍 "'인권' 빼달라, 옴부즈맨 '둘 수 있다'로 해달라" vs 野 "'둔다'로 명시해야"…법안 처리 '난망'

지난해 8월19일 국회 법안소위. /사진=뉴스1지난해 8월19일 국회 법안소위. /사진=뉴스1


"군인권보호관(옴부즈맨)은 본 법률에서 제외함이 바람직하다. 불시 부대방문권과 조사권은 지휘권 침해 우려가 있으며 인권위 및 권익위 기능과 중복된다. 군 내부 진정 등 해결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황인무 국방부 차관)

"군 내 이미 10개의 권리구제 제도가 있다. 사법처리기관으로 헌병, 검찰, 기무 등이 있고 행정처리 시스템으로는 소원수리제도와 감찰제도, 각종 신고제도가 있다. 헬프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와 고충처리, 인사소청 등 제도가 있다."(임천영 국방부 법무관리관)



도돌이표였다.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국방부는 '군 옴부즈맨' 신설 등이 포함된 군 인권 관련 법안에 대해 과거와 같은 이유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지난 7월 '윤일병 구타사망사건' 이후 1년 4개월간 국방부의 입장은 한 치 변화도 없었다.

현재 국회엔 2012년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군인지위향상에 관한 기본법안'을 시작으로 '군 인권' 관련 법안 10개가 계류돼 있다. 국방위는 매 회기마다 법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국방부 반대로 번번이 보류됐다. 국방위는 고심 끝에 이날 10개 법안을 병합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본래 이 법안 명칭은 '군 인권법'이었으나 국방부 의견을 존중해 수정했다.



'군 인권' 관련 내용도 대폭 축소했다. 본래 이 법안의 골자였던 '군인권보호관'은 전체 52개 조항 중 제42조 한 개로 줄었다. 1항은 '군인의 기본권 보장 및 군인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해 군인권보호관을 둘 수 있다'로 명시하고 2항에서 '군인권보호관의 조직과 업무 및 운영 등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밝혀 논의의 여지를 남겨놨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군 내 권리구제 제도가 존재하고 지휘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군 인권 법안을 반대해온 3성 장군 출신의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조차 "옴부즈맨 관련 내용이 42조 하나고 둘 수 있다는 것이니 장관이 안 둘 수도 있는데 그것도 수용 못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통과시키고 법률 안 만들면 되잖나. 임의조항이라니까. 2012년부터 법안이 이렇게 많은데 그냥 넘기고 가려 하나"라고 국방부를 질타했다.


그러자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법안의 취지가 옴부즈맨 제도 도입인데 '둘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은 동의하기 어렵고 소속을 어디 두든 군인권보호관을 둔다는 것과 언제까지 둔다는 것을 부칙으로 명시해야 한다"며 "이대로 통과되면 한 발자국도 뗐다고 볼 수 없다. 실효적인 건 하나도 얻은 게 없이 1년 내내 떠들어도 국방부가 반대한다는 것만 얻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황인무 국방부 차관은 '군인권보호관'을 '군기본권보호관'으로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기호 의원도 "'인권'이 들어가면 군대가 인권 침해하는 범죄집단이라는 전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빼야 한다. 제복 입은 집단 중 경찰은 옴부즈맨 제도가 있나"라고 거들었다.

일부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군기본권보호관'으로 명칭을 수정하는 데 동의했음에도 국방부는 '둘 수 있다'는 조항을 '둔다'로 수정하는 데 대해서는 끝까지 반대했다.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도 돌연 "세부 내용을 별도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법은 법 체계상 맞지 않고 의미도 없다"며 보류 의견을 제시했다. 같은 당 한기호 의원도 "옴부즈맨 만들어서 윤일병 같은 사고가 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군에 검찰, 법원, 헌병, 기무 다 있는데 옥상옥이다. 군 괴롭히기 위해 만드는 법"이라며 반대로 의견을 틀었다.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재 국방부 내 기관이 공정성을 의심받고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기관을 만들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국방부가 '둘 수 있다'와 '둔다'를 선택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성석호 국방위 수석전문위원이 최종 중재에 나섰다. 성 수석전문위원은 "이 대안은 고육지책이 맞다. 군인권보호관 기본 틀을 넣되 구체적 사항은 정부에 위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나름대로 중간 입장에서 최대한 통과될 수 있는 선에서 군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라도 만들기 위한 국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국방부는 끝내 "'군기본권보호관'을 '둘 수 있다'"는 안 외엔 타협 불가 의사를 밝혔다. '군 인권' 표현도 안 되고, '둔다'고 명시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상 군 옴부즈맨 제도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김광진 의원은 "법 명칭부터 다 양보했지만 국방부가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데 '둘 수 있다'로 의결하는 건 '안 둬도 된다'는 것을 용인하는 것과 같다"며 "'둘 수 있다'로 하느니 보류해 국방부가 이 법안에 반대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방부는 야당과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국방위는 이 법안을 법안소위 마지막날인 25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국방위는 이번 회기 내 반드시 '군 인권법'을 처리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방부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변화하지 않는 이상 19대 국회 중 합의가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내 독립적 군인권보호관을 두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안'(황영철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이 계류돼 있으나 정부가 뚜렷한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와 여당이 강조하는 군 내 인권 구제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난해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은 왜 발생했을까. 군 내 사건이 다수 은폐되거나 수사과정에서 축소되는 이유는 뭘까. 군 옴부즈맨은 군 외부에서 군을 감시하도록 함으로써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장치로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윤 일병의 죽음도 국방부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국회는 이 최소한의 장치도 만들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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