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 공중 발레리나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평론가 2015.11.0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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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서울발레씨어터 창립 20주년 공연 작품 '비잉(Being)'의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발레씨어터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서울발레씨어터 창립 20주년 공연 작품 '비잉(Being)'의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발레씨어터


[황인선의 컬처톡톡] 공중 발레리나
광야에서 10년간 외길을 걷는 것은 조직이란 버스를 타고 가는 10년과는 다르다. 경영은 서툴고 재정은 어려워 좋은 인재를 뽑고 유지하기 벅차다. 고개를 굽힐 줄 모르는 단체는 스폰서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10년을 견디면 길이 생긴다. 그런데 10년 이후라고 편치가 않다. 외부의 오해와 견제, 경쟁과 흔들기란 또 다른 돌풍이 분다. 시장수요가 작은 한국 발레 생태계의 민간단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니 1995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를 놓고 광야로 나와 창작하고, 대중을 가르치고, 규제와 씨름하고, 직접 표를 팔았던 길은 발목지뢰를 달고 간 길이었던 셈이다. 누구 얘기냐고? 한국 최초로 20주년을 맞은 민간발레단, 서울발레씨어터 이야기다.

◇ 갈라 & 비잉(Being)



20년간 그들의 창작 레퍼토리는 무려 100여 편,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1부 갈라는 과거와 다양함으로 빛을 뿌렸다. 감동도 컸다. 갈라 공연 마지막에 안무가 제임스전은 직접 출연해 이미 가신 스승에게 춤과 꽃을 바쳤다. 기술에 유혹을 받지만 결국 발레는 영혼과 몸이라고 가르쳤고, 한국 제자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파란 눈의 스승. 그 길을 걸어 온 제자.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춤의 발레가 아닌 인생의 발레를 느꼈을 것이다. 2부는 대표 레퍼토리 ‘비잉’에 바쳐졌다. 1960년대 미국의 뒷골목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절망과 방황에서 시작해 우주적인 테마와 사랑의 기원으로 끝나는 비잉. 발레와 연극, 발레와 스토리의 구분은 깨지고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어느덧 50대의 나이임에도 직접 출연한 김인희 단장의 공중 발레 장면. 관객들이 받은 충격과 감동은 어느 때보다 컸다. 허리에 맨 줄은 온 몸을 멍들게 하고 균형을 맞추기도 힘들다. 그래도 그녀는 공중 발레를 했다. 새처럼 날고 천사처럼 팔을 뻗으며 휘돌고 또 휘돌았다. 그렇게 그들은 20주년 기념공연을 마쳤다. 커튼콜이 몇 번이고 브라보는 얼마나 크게 울렸던가.

우리는 쉽게 100년도 짧다고 하지만, 민간 발레단으로서의 20년에 ‘겨우 20년’이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가 없다. 공연 후 사람들은 바랬다. 10년을 더 가달라고. 제임스전은 말했다. “여기까지가 우리 소명입니다. 뒤에서 남은 일을 할 겁니다.” 그의 대답에 최근 그의 창작공연 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원로의 위엄으로 세상 내려다 봐도 될 나이에 그는 현실의 바닥에서 분노를 터트렸었다. 끝나지 않은 도전이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밖에.



사족으로 붙이자면, 기념 공연 며칠 전에 나는 20주년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주제는 ‘민간예술단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마음이 짠한 주제다. 20년을 했어도 아직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니. 나는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K-스타와의 협업(Collaboration)이었다. 한국의 티켓 파워는 누가 뭐래도 K-스타들이니까. 또 하나는 재정 안정성과 확장성을 위해 영세한 많은 발레학원들과 연계하는 서울발레씨어터 프랜차이즈 발레학원 사업이었다. 몸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다. 발레는 몸을 쓰기에 더 상상력에 의존한다. 칵테일 베이스처럼 얼마든지 믹스 앤 매치(Mix & Match)도 가능하다. 그러니 대중들의 몸 인문학, 창조성 개발, 치유에도 적격이다. 그러니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넓게 가라고. 나로서는 진심으로 말했지만 “뒤에서 남은 일을 하겠다”는 그들의 선택이 무엇일지는 감히 모르겠다. 대신 그들을 봄으로 나를 보려고 한다. 나는 20년을 그들처럼 사랑하며 싸우며 갈 수 있을 것인지, 20년 뒤에 공중발레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승들에게 꽃을 바칠 수 있는 행복이 있을 것인지.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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