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이제 노벨상은 생각하지마

머니투데이 장윤옥 테크M 편집장 2015.10.09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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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옥 기획취재부 부국장장윤옥 기획취재부 부국장


다시 노벨상 시즌이다. 노벨상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우리나라는,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무슨 연례행사를 치르듯 비슷한 제목의 글과 기사가 쏟아진다.

요지는 ‘왜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를 못 내느냐’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집계하는 것처럼 국가별로 배출한 수상자 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수상자들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과를 냈는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하는 이야기도 살짝 고명처럼 곁들여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지를 정부 차원에서 정책과제로 연구할 정도다.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거는 기관도 나온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당위'는 자연스럽게 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돈을 많이 투자했는데 우리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는 식의 지적이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분야를 중심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 전통의학 연구가 인정을 받으면 한의학 분야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중성미자 연구로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해당 분야가 반짝 주목을 받는 식이다.



물론 아주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사실이다.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자기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비가 충분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절대 금액 면에서 보면 그렇게 적다고만 할 수도 없다. 거기다 연구개발은 스포츠가 아니다. 올림픽이나 축구처럼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해외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많이 데려온다고 갑자기 우리 연구수준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해외의 우수한 연구시스템을 접한 것으로 따진다면, 우리 학계나 연구계 종사자중 다수가 해외 유학 경험을 갖고 있으니 선진 시스템에 대한 정보나 경험의 부족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과학기술계가 해외 트렌드를 쫓아, 쉽게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고 선진 연구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외국의 정상급 코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준 덕분이다.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연구가 의외로 큰 성과를 낼 수도 있고 큰 기대를 모았지만 좀처럼 성과를 나오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유행을 쫓아 주제를 찾고 제목만 그럴듯한 과제를 지원하면 오히려 연구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10미터는 파야 물줄기가 있는데 여기 저기 1미터 정도만 많이 파 놓고 물줄기가 올라오기를 바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적은 규모라도 꾸준히 성과를 쌓아온 연구자들을 선정해 지원하고 그런 신뢰와 성과를 쌓은 연구자들이 더 큰 프로젝트를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또 형식적인 공정성에 매몰돼 누구에게나 조금씩 나눠주는 식의 지원 방식에서도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과제선정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극 참여하고 선정이나 평가의 과정이 연구의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연구는 실패하더라도 연구자는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다른 연구자들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노벨상은 그만 잊자. 노벨상에 목을 매는 대신 지금 우리의 가진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자. 나아가 세계 인류의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자. 원래 노벨상은 그런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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