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과 전통적 우방 관계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이 두 자릿수 성장을 구가하며 G2로 급부상하는 과정에서 세계 교역질서도 미국과 중국, EU 등을 축으로 급속하게 재편됐다. 완성품 만큼이나 가공중간재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도 중국을 중심으로 무역체계를 다시 세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힘입어 해운과 조선, 원자재가공업은 이른바 수퍼사이클을 맞았다.
미국이 TPP 가입을 결정한 2008년에 한국은 이미 미국과 FTA를 맺은 상태이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과의 FTA도 추진하고 있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구도 상 당연한 전개였다. 이런 상황에서 TPP참여에 초반부터 적극성을 보이기는 어려웠다. 특히 중국은 당시 FTA에 대해 지금보다 한층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 일단 중국을 교섭으로 끌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TPP는 언감생심이었다.
정부는 TPP 가입을 전제로 시기와 방법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정감사에서 "TPP에 동참하는 방향으로 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공개된 협정문을 보고 여러 타결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따져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여는 하겠지만 급할 것은 없다는 거다.
여기에는 TPP 1차 가입의 실효가 크지 않다는 계산이 깔렸다. 12개 TPP 가입국은 일단 원칙적 타결을 이룬 상태다. 상품양허가 구체화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양자 FTA였던 한중FTA도 원칙적 타결 후 양허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12개 나라가 이해득실표를 맞추는 과정은 더 지난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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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미국과 중국 간 힘의 균형을 따지면 한국이 카드를 쥐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중국과 FTA를 체결한 무역대국이다. TPP 입장에서는 중국향 플랫폼이 된다. 언제든 손짓하고 싶은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한 통상전문가는 "메가FTA는 공통양허(관세철폐)와 동시에 개별양허를 모두 세세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미시적 과정을 거치다보면 다양한 변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관세철폐 동향을 면밀히 살핀 후 가입 시기를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