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골프장의 저주?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5.10.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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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사랑이 유별난 대기업 오너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골프장을 짓고 나서 개인과 사업이 망가진 사례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회생절차를 진행중인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이 그렇다. 11년전 이 골프장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늦깎이 골프 열정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클럽하우스 외벽에 두른 석재에서부터 변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입해 만들었다던가. 그러더니 결국 이 프리미엄 골프장은 10년도 못 버티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골프장이 시들어가는 동안 동부그룹은 거의 해체상태가 되고 말았다. 김 회장 역시 기업인으로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동부 측이 만들어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회생계획안은 이 골프장을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하되, 동부 계열사들이 그대로 지배하는 구조로 돼 있다. 동부 측은 다른 뜻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채권단은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태광그룹이 4년 전 개장한 휘슬링락CC와 효성그룹이 재작년 문을 연 웰링턴CC도 대표적인 호화 골프장이다. 태광의 오너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회장은 배임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 중병으로 위독한 상태. 조석래 효성 회장은 아들과의 불화에 재판까지 겹쳐 혹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토록 공들여 만든 골프장을 제대로 밟아 보지도 못한 채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드라마틱하기로는 동국제강의 페럼클럽(2014년 6월 개장) 만한 곳도 없다. 이 곳 역시 잘 만든 골프장이지만, 건설 과정에서 동국제강의 재무상태가 점점 나빠져 결국 개장 직전 채권은행과 재무개선약정을 맺기에 이른다. 또 개장한지 1년도 안돼 오너인 장세주 회장이 횡령·도박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골프장이 풍파를 몰고 온 건지, 풍파가 몰려오는 시기에 골프사업에 손을 댄 게 문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 누군가는 '골프장의 저주'라고도 한다. 골프장에 매달린 기업 오너치고 험한 일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렉스필드CC(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더플레이어스CC(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의 오너들이 거론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인 없는 기업인 대우조선해양 같은 곳도 3년 전 써닝포인트CC를 개장하는 바람에 회사가 망가졌다며 농담 섞인 저주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골프장의 저주'는 허무맹랑한 비약일 뿐이다. 창업주의 각별한 애정이 국내 최대 골프장 사업자의 지위로 이어진 대표적인 재벌이 삼성그룹이다. 삼성이 골프사업 때문에 문제가 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현대차, 한화, GS 등 골프사업에 적극적인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 그 중에는 강원도 오지에 골프장을 개발해 상당한 부동산 투자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진 미래에셋그룹 같은 곳도 있다.

다만 골프장 사업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가 큰 차이를 가져오는 건 분명한 듯 하다. 결과적으로 '저주'가 된 몇몇 골프장의 경우, 오너가 도를 넘는 사치를 부렸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투자를 했다. 골프장을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해서는 안되는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그 기업주의 내면은 이미 파탄이 일어나기 시작한 단계였으리라. 골프장 뿐 아니라 다른 사업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봐도 된다. 즉 골프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스스로 무너질 준비가 돼있었던 것이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호화 골프장을 구상하는 순간 그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비정상적인 골프장을 지어놓고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기업은 당분간 요주의 관찰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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