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 박스]영조는 권력에 눈먼 아버지였나, 냉철한 권력자였나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2015.09.30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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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초콜릿 박스]영조는 권력에 눈먼 아버지였나, 냉철한 권력자였나


루벤스와 고야의 작품 중 아이를 뜯어 먹는 한 남자를 그린 그림이 있다. 그의 이름은 크로노스. 사투르누스라고도 불리는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우라노스의 아들이자 제우스의 아버지다.

천공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관계하여 18명의 자식을 낳고 이들을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가둔다. 이에 격분한 가이아는 자식들로 하여금 우라노스를 습격하게 했는데 이에 나선 이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어머니가 준 낫으로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고 그의 자리에 대신 오른다. 이후 크로노스는 신탁을 듣게 되는데 자신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두려워진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한 후 얻은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이들을 모두 먹어 삼켜버린다.



이 상황을 루벤스와 고야는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루벤스가 그린 크로노스는 근육질의 탄탄한 몸만큼이나 단련된 정신으로 철저하게 계획된 일을 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거대한 위엄으로 가득한 모습이다. 반면 약 200년 후 고야가 그린 크로노스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아이를 씹어 삼키고 있다. 튀어나온 눈에서 이성을 잃은 광적인 욕망이 느껴진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거나 자식을 견제해 해치는 일은 그리스 신화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에서도 간혹 보아온 모습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 속에서 왕권을 둘러싼 음해와 모략, 피를 부르는 사건은 허다했다. 그 중 임오화변은 아마도 가장 많은 의문을 남긴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영화 '사도'를 통해서도 재조명되고 있는 이 사건엔 ‘신하들에 의해 계획된 정치적 사건’이라는 의견과 ‘사도세자의 심각한 정신질환’이라는 두 가지의 의견이 대립해 왔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스토리가 입혀지는 것이 역사이리라. 과연 영조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고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을까? 당시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이성을 버린 고야의 크로노스였을까, 아니면 루벤스의 크로노스처럼 냉철한 권력자였을까? 사도세자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죄로 제거될 수 밖에 없었던 광란자였을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조형된 희생양이었을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은 변한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입맛에 맞게 그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그렇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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