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주 하락에 좌절하는 또다른 50만명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5.09.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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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제약·바이오산업에 거는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간절한 희망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올해 들어 급등하던 제약·바이오주식들이 중국경제 불안, 9월 미국금리 인상 여부에 이어 대장주이던 한미약품 (324,500원 ▲2,500 +0.78%)의 주가조작설까지 겹치면서 급격한 조정을 받고 있습니다. 7월 고점에 매입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50%가까이 하락한 상태라 투자손실의 고통이 이만저만한게 아닙니다.

그런데 제약·바이오주의 하락을 두고 주식투자자와는 별개로 다른 차원의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50만 명(한국희귀난치병연합회)에 달하는 2000여종의 희귀난치병 환자들입니다. 주식투자 손실은 회복과 재기의 기회가 흔히 찾아오지만, 희귀난치병의 회복기회는 그야말로 희귀합니다.



이들의 셈법은 간단합니다. 제약·바이오주식이 오르면 해당 기업과 산업에 자금이 흘러 들어갈 것이고, 이 자금 중 일부는 희귀난치병 연구에 사용될 거라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계산법입니다. 주식투자자는 돈을 벌게 되지만 이들은 건강과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횡보국면에 있던 우리나라 주가가 작년말부터 박스권을 탈출하는가 싶더니 중국발 금융위기설로 다시 주저앉고 있습니다. 1970년대 개발경제시절에 투자된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약효가 크게 소진됐고 200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한 ICT로의 산업패러다임 변화에 적절하게 편승하지 못한 데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크버그, 래리 페이지, 빌 게이츠 등과 같은 창조적 ICT 거인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입니다.



한때는 인터넷 강국이었지만 그에 걸맞는 산업적 성과물을 놓쳐버린 지금, 그래도 남은 희망이 있다면 제약·바이오산업이라고 합니다. 2004년 사이언스지 논문을 통하여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온 나라를 들썩였던 황우석 사건이 바이오 선진국의 기대를 헛되게 만든 것은 고사하고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우롱한 사기극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를 따르는 열성팬들이 있다는 사실은 제약·바이오에 거는 국민적 열망과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안타깝게 보여 줍니다.

그만큼 제약·바이오산업의 영향력이나 모멘텀은 다른 어떤 산업 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ICT산업이 생활의 편의를 높여 준다면, 바이오(BT)산업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 가치가 다릅니다. 그래서 삼성, LG, CJ, 한화 등 대기업들이 일제히 바이오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과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대체로 일치합니다.


먼저, 보험연구원이 지난달 17일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에는 노인 인구가 37.4%에 이르며 이들 중 94%는 한 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미래이슈분석 보고서에도 10년 후 최고 이슈로 초고령화를 들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제약산업이 케미컬(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생물의약품)로 이동했고, 주요 의약품의 특허기간이 속속 만료되는 상황에서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에 의한 시장잠식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은 글로벌 제약회사로 하여금 내부 R&D의 축소와 라이센싱인(licensing-in)을 통한 비용절감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상위 50대 제약사의 2015년 추정 매출액의 절반을 외부 라이센싱 제품이 차지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며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04년부터 생명공학이 국가의 차세대성장동력 산업으로 지정되고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국가적 바이오 인프라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전국에 25개의 바이오클러스터가 바이오산업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어 민간기업의 바이오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고, 벤처캐피털의 투자액도 바이오부문이 전체의 17.9%(2014년)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체 박사학위 배출자 중 25.23%(2012년)가 생명공학 분야에 몰려있어 인적자원도 풍부합니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 모두가 제약·바이오산업의 절대적 성장성과 긴급성을 인식하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므로 그 성과는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식시장 조정으로 피해를 입은 제약·바이오 투자자들의 고통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회복된다고 해서 50만명의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근원적인 좌절감까지 회복되기엔 갈 길이 멉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지 확대나 기부 운동 같은 것이 이들에게 큰 ‘도움'은 될 수 있어도 ‘희망’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질환 자체의 치료 가능성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런데 희귀질환의 연구개발은 치료시장의 절대규모가 작기 때문에 민간기업이 독자적으로 담당하기엔 투자유인도가 너무 낮습니다. 그러므로 연구개발 초기단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누적되는 재정압박에 불구하고 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바이오산업 중 희귀질환 분야는 신성장동력 차원이 아니라 최소한의 국민생존권보장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제약·바이오의 주가상승에만 기대도록 방치하는 것은 무척 서글픈 일입니다. 지금도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슬픔으로 보내는 이 땅의 희귀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해당 분야의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좀 더 박차를 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정부도 누증하는 의료복지 비용의 장기적 절감 차원에서도 희귀질환 연구개발 지원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30년 가까이 증권업계에 헌신하다가 2년전 청천벽력 같이 찾아온 루게릭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필자의 오랜 친구 DS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 칼럼을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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