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 전이 떠올랐다. 1983년,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교 친구들과 지리산을 거쳐 여수로 가기로 했던 때다. 낑낑거리며 산을 오르다가 지리산 중턱에서 커피 한 잔 하려는데 갑자기 엄청난 사이렌 소리와 “실제상황입니다.” 방송 소리가 산을 흔들었었다. 북한 공군장교 이웅평이 비행기를 몰고 망명을 했던 때다. 스무 살 우리는 혼란과 불안감 속에 등산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었다. 내가 지리산을 찾은 건 단 두 번. 이제 32년이 흘러 다시 지리산을 갔건만 그때와 비슷한 일이 또?
하심(下心)! 일본어에서는 이 단어를 ‘속셈’이나 ‘나쁜 음모’로 쓰지만 이 절에서는 아래로 내리라는 동사의 뜻일 것이다. 마음을 아래로 향하게 해라. 도발하지 마라. 여기는 업데이트, 업그레이드, 업셋 세상이 아닌 다운의 세상. 마음도, 짐도, 업보도 내려놓아라. 그런 가르침이 바로 마음에 꽂혔다. 그 하심의 세상에 가면 분위기, 법도, 도상과 언어 체계가 다르고 삶의 화두가 다르고 무엇보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절의 시간과 의미 속에 스스로를 맡겼다. 3배 예불을 하고 마음을 잠시 가다듬은 후에 남자들 7명은 절 뒤 산으로 가서 잘라놓은 나무둥치들을 트럭에 날랐다. 큰 나무는 굴리고 작은 나무는 들어 두 시간 일하니 한 트럭이 꽉 찼다. 이걸 절에서는 운력이라고 한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하는 울력을 말함인데 이를 통해 세상 잡사를 머리에서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 시간에 포행을 하는데 양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내리깐 채 발뒤꿈치를 먼저 대어 천천히 산길을 4-5시간 걷는 수련이다. 그런데 절에서 말하는 이 포행은 정확한 한자어가 없다. 사전에서는 경행, 보행으로 갈음해서 해석한다. 절에서는 앞에 말한 운력, 용신제도 사전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고 있었는데 그럼 어떠랴.
우리는 언어 너머의 세상에 있는 것을. 비록 하루지만 여기 온 처사와 보살들은 말을 줄였고 목소리를 줄였다. 대신 느끼려고 했다. 산, 물, 소리, 뜻... 우주를.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을 중얼거려 본다. 하심! 마음을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아래를 보아라. 도발하지 마라. 내려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