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의 확산 막으려 軍 안간다"…'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적'일까

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2015.08.2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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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1>]"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선의의 피해자…폭 넓은 논의 통해 대안 마련해야"

편집자주 최근 남북간 군사적 긴장 상태가 고조되면서 "재입대해서 싸우겠다"고 할 만큼 국가 안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매년 6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다 전과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는 얼마나 이뤄졌는지, 그 문제점과 대안은 무엇인지 총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7연대 1,2교육대 훈련병 수료식.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27연대 1,2교육대 훈련병 수료식.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


#20대 남성 A씨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사태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그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서 마주한 공권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경찰들은 항의하는 사람들은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는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병역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국가를 지키려 군대에 갈 수는 없다"며 "국방의 의무는 더이상 신성하지도 않고 명예롭지도 않다"고 밝혔다.

# B씨는 2011년 5월 입대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연병장 모퉁이를 돌자마자 조교의 욕설이 들려왔고 군 간부들은 훈련병을 아이 다루듯 대했다. 군대니까 참자는 마음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활관 안에는 '안보의식 호국정신으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와 같은 극단적 문구가 붙어있었다.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는 결국 며칠 만에 스스로 훈련소를 나왔다. 입대자가 개인적 이유로 군에서 이탈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군생활을 할 수 없다'는 B씨의 강한 주장에 훈련소에서도 그를 붙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결국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B씨는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을 무작정 피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나약해서 포기한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극단적인 단체인 군대에 가는 것이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의무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폭력이 가장 쉽게 정당화되는 방법은 어쩔 수 없다고 말문을 막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만7000여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600명 안팎의 청년들이 입영을 거부하고 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특정 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다양한 사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점차 증가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후진적 군대에 동참할 수 없어서 △악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에 반대해서 △군대는 지배계급의 도구라서 등 다양한 정치적, 철학적 신념을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시작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6월 여호와의증인 신도 38명은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체포돼 수감됐다. 1953년 6·25전쟁 당시에도 병역을 거부한 자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된 바 있다. 이후에도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자들은 꾸준히 존재했다. 군사 정권은 1973년부터 '병무행정 쇄신지침'을 내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들을 강제로 입영시키는 등 탄압을 자행했다.

이같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알려진 것은 2000년대부터다. 2001년 한 언론사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사회에 알리면서 다양한 논의들이 시작됐다. 같은해 12월 오태양씨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며 병역 거부를 선언한 이래 종교적 신념 외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에 대해 10년이 넘게 논의가 지속돼 왔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구체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휴전국이라는 국내의 특수성과 국민 여론 등 이 논란에 대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때 바람직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은 사회적 문제이기 전에 당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는 대학생 C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종의 선의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폭 넓은 논의를 통해 단순히 군대에 가기 싫어서 가지 않는 것이라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이 없어지고 대체복무 등 제도적 대안이 속히 마련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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