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대한항공은 호텔 건립을 진짜 포기했을까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8.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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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신 브리핑 주도한 대한항공…"호텔건립 안하겠다거나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로 마무리

[뉴스&팩트]대한항공은 호텔 건립을 진짜 포기했을까


모양새가 이상한 기자 브리핑 자리였다. 18일 오후 1시30분 서울 외교부 청사. 브리핑 주도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지만 김 장관이 2시 국회 일정이 있다며 준비된 원고를 30분 읽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겨진 질의응답은 문체부 국·실장에게 맡겨졌다.

국정2기 문화융성을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에 참석자들이 소개됐고, 이 가운데 대한항공과 CJ그룹 관계자도 ‘서포트 역할’로 호명됐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전통과 첨단의 조화를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다는 문화융성 기조에 대한 보편적 질문은 사라지고, 오로지 보도자료에 적힌 ‘대한항공의 복합문화허브 조성’에 대한 특정 질문이 쏟아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조성배 대한항공 상무가 첫 질문부터 단상에 올라 기자들과 난상토론을 벌여야했다. 정부 발표 자리에 사기업 담당자가 국정2기 브리핑을 주도하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 셈이다.



대한항공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광화문의 호텔 짓기’ 사업이 문체부 문화융성 추진 계획과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듯한 모습은 기자들에겐 ‘황당’ 그 자체였다.

대한항공은 갑자기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정부 발표 자리에서 송현동 부지 호텔 건립 중단 얘기를 꺼내든 것일까. 대한항공이 3000억 원 가까운 돈을 주고 산 금싸라기 땅을 정부의 정책에 맞춰 갑자기 방향을 튼 뒤 다시 자신의 돈을 투자해 메세나 운동의 일환처럼 시민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결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① 연기된 정부 브리핑, 결국 대한항공 설득 시간?


문체부의 ‘문화융성 및 문화창조융합벨트’ 관련 브리핑은 원래 11일 오전 9시에 예정됐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때문인지 한차례 연기했고, 그렇게 일주일을 끌며 브리핑 당일인 18일 ‘긴급 브리핑’이라는 제목으로 단 몇 시간 만에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배포된 자료에서 연기 사유에 해당하는 대목을 찾기 어려웠다. 전통 문화에 대한 가치 창출은 오래전부터 예견돼 있던 목록이고, ‘문화가 있는 날’의 확산이나 창조융합벨트 사업 계획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걸림돌이 있다면 신규거점 확대 부문.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조성 변경과 체조경기장 리모델링 사업이 새로 추가된 사업이었는데,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연기할 만한 이유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체조경기장 역시 문체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연기의 적절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의문의 브리핑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땅의 용도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대한항공이 의견 조율과 구체적인 사업 계획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는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② 정부 브리핑을 주도한 사기업?

조성배 대한항공 상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현재 공을 들이는 문화창조융합벨트, 문화융성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며 “물류로 시작한 한진그룹은 오래전부터 물류와 관광, 문화는 서로 연결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호텔을 제외하고 문화관광 허브 구축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진작 이 같은 계획을 따로 발표하지 않고 정부 회견에서 내놨을까. 대한항공이 ‘오래전부터’ 문화 부흥 철학을 견지해왔다고 보기엔 급조한 느낌이 적지 않았다.

브리핑 도중 대한항공 직원이 기자들에게 뿌린 ‘송현동 문화센터 건립계획’도 급조한 티가 넘쳤다. 사진 한 장에 문장 하나씩으로 구성된 자료는 문화복합허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 길이 요원했다.

물론 해석은 분분하다. 정부의 국정 2기 문화융성 계획에 송현동 부지 용도 변경이 중요했다면, 대한항공은 오히려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브리핑 자리에 서게 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③ 대한항공, 호텔 진짜 포기하나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 등에 3000억 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고 송현동 부지를 매입했다. 이듬해 7성급 호텔을 포함한 문화복합단지 건립을 추진했으나 교육청과 학교 등의 반대에 부딪혔고 2012년 6월 대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호텔 건립이 무산되는 듯했으나, 정부는 2012년 10월 ‘유해시설없는 관광호텔은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 지을 수 있다’는 취지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원점에서 시작됐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이 개정안이 다시 제출되면서 대한항공측이 유리한 고지를 얻는 듯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호텔 건립에 대한 대한항공의 입장은 명확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조현아 전 상무의 ‘땅콩회항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이 나빠졌고, 대한항공의 대부분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 사업에서 ‘호텔’을 제외하겠다고 이날 결정한 것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급 호텔의 꿈을 안고 6년을 달려왔는데, 무산을 결정하기까지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갑작스러운 번복의 배경에 ‘조현아 전 상무 구하기’와 ‘대한항공 이미지 쇄신’이라는 명분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송현동 부지에 세워지는 문화복합허브는 2017년까지 1차 완공을 앞두고 있다. 광화문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이 명백한 이 허브가 완성되면 외국인이 들끓고 한국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요충지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땐 ‘땅콩사건’도 잊혀질테고 ‘숙소 좀 지어달라’는 외국인들의 민원이 쇄도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 상무는 ‘호텔 건립이 무산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호텔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대한항공의 또 다른 관계자도 “호텔을 제외한 문화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며 “호텔 건립을 안하겠다거나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일단 급한 불은 막고 보자는 심산일까. 정부와 함께 문화융성 기조에 급히 끼어든 대한항공이 진짜 노리는 속내가 무엇인지 다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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