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동물로 태어난 죄

머니투데이 박다해 황보람 박광범 남영희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기자 2015.08.18 09:40
글자크기

[the300](종합)

"이제는 동물국회"…여야의원 39명 '동물보호법' 박차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복지국회포럼' 창립식 모습/ 사진제공=박홍근 의원실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복지국회포럼' 창립식 모습/ 사진제공=박홍근 의원실


"키우던 강아지가 '샛별'인데 나만 보면 짖어요. 몇 번 쓰다듬으려고 시도하니 화악 물려고 해서 포기했어요. 아마 샛별이도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이에요. 샛별이는 14년 살다 죽었는데 딸들이 지 아버지 죽어도 그렇게 슬프게 울진 않을거야. 샛별이를 화장해서 뿌렸는데 (딸이) 납골함을 자신의 방에 놔두더라. 사람과 동물 사이에 그런 애정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저도 개를 길러봤는데 14년 간 살고 자연사했어요. 화단에 묻어주고 너무 가슴아파 다시는 기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총선 때 누가 젖 뗀 강아지를 주고 간 거에요. 결국 집에 갖다놓고 길렀는데 정이 들어서 죽은 개 이름을 물려받아 '해피'에요. 계단 올라가면 해피가 발소리만 듣고도 우리 식구인지 다른 식구인지 구별해요" -이석현 국회부의장




지난달 6일 국회에선 난데없이 의원들의 반려견 자랑이 이어졌다. 여야 의원 39명으로 구성된 '동물복지국회포럼' 창립식 자리에서다. 동물복지국회포럼은 헌정사상 최초로 동물복지를 위해 국회 내 결성된 모임이다. 공동대표는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맡았다.

포럼은 동물복지에 관심있는 여야 의원들이 한데 모여 관련 입법활동을 보다 실효성있게 추진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 포럼에는 의원들 뿐 아니라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동물 전문 언론·방송 관계자, 수의학계 등 학계 전문가도 참여한다.



포럼은 17일 첫 토론회를 열고 활동을 본격화했다. 동물보호에 대한 입법과제와 야생·반려·농장·실험동물 등 분야별 이슈를 점검하고 정기국회에서 관련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런치리포트]동물로 태어난 죄
◇ 관리대상에서 복지의 주체로…동물보호법 핵심은


실제로 국회에서 동물복지와 관련된 입법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19대 국회에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유기동물 보호 △동물학대행위 범주 확대 △동물학대행위자 소유권 제한 △동물실험 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 20여건이 발의돼있다.

개정안은 모두 동물을 단순히 보호·관리해야 할 객체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주체적인 권리를 가진 생명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생명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고의로 사료나 물을 주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를, 같은 당 윤명희 의원은 좁은 공간에서 과도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는 이른바 '애니멀 호딩'행위를 동물학대행위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등 '적극적' 행위만 동물 학대로 간주한 현행 법이 다양한 학대 행위를 처벌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관련 개정안을 가장 많이 발의한 의원은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다. 문 의원은 특히 화장품 실험 등에 사용되는 동물을 윤리적·인도적인 방법으로 다룰 것을 명시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물보호 대상을 '반려동물'에서 '실험용동물'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문 의원은 또 반려동물을 대여하는 영업이나 경품으로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아울러 현재 유기동물이 등록시스템에 공고된 뒤 2주 동안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안락사를 시키는 것과 관련, 안락사 대신 지방자치단체 등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학대행위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그들로부터 소유권을 박탈하는 개정안도 다수 발의돼있다. 조경태 새정치연합 의원은 동물학대행위자가 전문가들로부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은 동물격리 조치 후 동물학대행위자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개정안은 동물학대로 형이 확정된 자에게 형 집행 종료 뒤 5년 동안 동물 소유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밖에 양승조 새정치연합 의원은 구제역 등을 대비해 예방적 살처분을 할 때 생매장을 하면 처벌하는 개정안을, 같은 당 이목희 의원은 미용상의 이유로 꼬리자르기 등의 수술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의 문정림, 새정치연합의 서영교·진선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동물보호법'이란 법명을 아예 '동물복지법'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 발의는 많이 됐는데…논의 더딘 이유는?

문제는 이같이 다양한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법 소관 상임위원회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물보호와 관련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련 법도 농해수위 소관이 됐다.

그러나 농해수위에서 동물보호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경우는 없다. 농해수위 소속 한 보좌관은 "농해수위에서는 동물이라고 해도 가축이나 축산업쪽에만 관심이 있는데 동물복지가 축산업하고 대립되는 부분이 있어 논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될 사안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또 "축산업도 당장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산·판매도 잘 안된다고 아우성인데 뜬금없이 복지까지 의논해가면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개별 개정안은 타당한 내용이지만 먼저 나서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FTA와 같은 당장의 농업현안에 밀려 논의가 미뤄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4월 문정림·심윤조·민병주 의원의 개정안이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 이례적으로 상정됐지만 전문위원이 검토보고만 한 채 논의가 끝났다.

당시 유성엽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 법은 한중 FTA 국회 비준 이후에 차분하게 논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한가한 생각이 든다"며 "농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한중 FTA를 통해서 가닥 좀 잡아 놓고 나서 아주 진지하고 깊게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같은 당 박민수 의원도 "이것(동물보호법 개정안)은 (논의하는 데) 시간이 무지하게 걸릴 것 같다"고 유보적인 의견을 표했다. 박 의원은 "예를 들어 '정당한 사유없이 동물을 죽인 자'라고 돼 있는데 정당한 사유가 있으려면 어떻게 죽여야 되나"라고 반문하며 "(해당 개정안들은) 완전히 동물복지 차원에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봐야 논의가 가능하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이 조항이 좋다 안좋다, 의미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체계도 안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복인 지난달 23일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광화문 네거리 인근에서 '한국 개들의 가혹한 일생'을 주제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은 폐기물로 처리 되어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먹고 과다한 항생제를 투여받는 등 비위생적인 사육환경 속에서 동물학대가 벌어져 관련 금지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뉴스1중복인 지난달 23일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광화문 네거리 인근에서 '한국 개들의 가혹한 일생'을 주제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은 폐기물로 처리 되어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먹고 과다한 항생제를 투여받는 등 비위생적인 사육환경 속에서 동물학대가 벌어져 관련 금지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뉴스1
◇동물복지국회포럼 "정기국회 내 작은 성과라도 이루는 것이 목표"

동물복지국회포럼은 결국 이같은 논의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포럼 공동대표인 박홍근 새정치연합 의원은 창립식에서 "동물보호 법안이 천양지차로 발의돼있는데 첫술에 배부르진 않을 것"이라며 "의원들 생각도 다르고 동물관련단체도 의견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저희가 좁혀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대 국회 초기에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입법보완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야가 공동으로 참여했으므로 20대에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여당 측 공동대표인 문정림 의원도 "처음 국회 들어와서 낸 법안이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화장품법 개정안인데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참 할 일 없다'고 보고 식약처에서도 반발했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후 유기견 감소대책, 동물경품금지, 동물대여금지 등 법안을 내면서 여러 의원들이 동참해주시는 걸 보고 3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정쟁이 있는 법안이 아니고 국가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며 "예산이나 법적인 개선 등을 함께 노력한다고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포럼 실무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여야 의원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동물관련 단체들도 다 따로따로 활동하며 교류가 없었는데 이번 포럼을 통해 처음으로 모두가 함께 모였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 포럼이 20대 국회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동물은 생명? 물건?…법 있어도 보호 못받는 '법외생명'

2013년 술에 취한 승려에게 쇠몽둥이로 맞아 실명된 백구 하늘이(왼쪽). 두개골 골절 등 상처를 회복하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오른쪽)./사진=동물보호단체 '케어'2013년 술에 취한 승려에게 쇠몽둥이로 맞아 실명된 백구 하늘이(왼쪽). 두개골 골절 등 상처를 회복하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오른쪽)./사진=동물보호단체 '케어'
# 2013년 5월, 태어난지 3개월 된 강아지 하늘이는 술에 취한 승려에게 쇠몽둥이로 수십차례 얻어맞아 두개골이 파열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하늘이를 구조하고 해당 승려를 경찰에 고발했고, 결국 승려에게는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케어 측은 "동물보호법 상 학대의 최고형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낮은 액수"라고 말했다. 현재 하늘이는 양쪽 눈이 완전히 실명된 채 케어 센터에서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보호법이 발효되고 유의미한 판결도 이어지고 있지만 '동물보호'라는 이름에 걸맞은 법적 지위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분류되고 헌법에도 인간의 동물 보호 의무 등이 명시되지 않아 동물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동물보호법'이 법적인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국 법에서 인정하는 '생명'은 인간 뿐이며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 금지행위 등을 규정하는 등 방식으로 동물을 '물건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법 마저도 사실상 동물 그 자체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니다. 동물보호법의 목적에는 '사람이 동물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법률'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동물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갖는 것 보다는 인간의 소유물로서 그 가치가 인식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을 물건이 아닌 '제3의 존재'로 규정하고 헌법에 인간의 동물 보호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법률조언을 맡고 있는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만들 때 목적을 고치려는 시도를 했는데 실패했다"며 "법에 접근하는 시각과 태도가 동물의 권리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을 민법에 명시했다. 동물에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한 것. 2002년 개정된 독일 기본법에서는 헌법에 적합한 질서의 범위 내에서 동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기도 했다. 동물 보호에 필요한 법적 기틀을 완성한 셈이다.

반면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그 자체로 따로 떨어진 섬과 같다. 아직도 동물학대 사건 등 수사현장에서는 동물을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소유자의 '재산' 정도로 인식해 미온적인 대처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박소연 '케어' 공동대표는 "동물보호단체가 학대 사건을 강하게 이슈화 시켜야 그나마 학대자들이 벌금형으로라도 처벌을 받는다"며 "개인이 동물학대에 대응하면 쉽게 무혐의 처분이 나거나 몇십만원 피해보상에 그친다"고 전했다.

"동물복지 시급" vs "아동·노인복지부터"…'동물원법' 논란

사진=뉴스1제공사진=뉴스1제공
#. 지난 6월 임시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동물원법' 심사 당시

"이게 파격적이기는 하네요"-김용남 새누리당 의원
"예. 파격적이에요"-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이 얘기를 생소해 하신다는 게 저는 또 당황스러운데요"-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동물원법' 제정이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국회에서 입법공청회를 개최하며 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일부 의원들과 관련부처의 미온적인 입장으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3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동물원법' 제정안(장하나 의원)과 '동물원 관리·육성에 관한법' 제정안(양창영 의원),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법' 개정안(한정애 의원)이다. 이들 법안은 모두 동물복지 향상을 골자로 한다.

최근 동물 학대 등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및 관리를 위한 법적 근거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에는 21개 동물원·수족관이 등록돼있지만, 이는 전체 대비 극소수에 불과하다. 동물원 설립을 규정하는 법적 제도가 없기 때문에 현재 국내에 있는 동물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법적 제도가 미비해 △동물복지상태 평가 불가능 △폐원시 동물 처우 불투명 △멸종위기종 관리 부실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동물단체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은경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최근 5년내 동물원 혹은 수족관 방문 경험이 있는 10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9.6%의 응답자가 동물원법 제정에 동의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동물원법 제정에 국민 전계층이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 오피니언 리더층에서 동물복지 관련 법제도 강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동물원법 제정은 사회적 요구이고, 모든 국민이 원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 움직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장하나 의원의 법안이 발의된 지 2년여가 다 됐지만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 법안소위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에 따라 장 의원은 관련법안들을 조율해 지난 6월 임시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수정안을 제시했다. 당초 장 의원의 제정안이 식물원을 포함한 동물원, 수족관을 대상으로 했지만, 식물원 주관부처인 산림청의 이견을 받아 들여 식물원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또 당초 '관람목적의 인위적 금지' 조항도 업계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을 수용해 일부 수정했다.

수정안은 '동물원 의무등록제' 시행과 함께 △학대 행위 △도구·약물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 △광고·전시를 목적으로 때리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광고·전시 등의 목적으로 동물을 훈련할 때 동물복지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했다.

장 의원은 "(계속) 방치하기에는 동물원법이 국회에서 많이 숙성했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법안소위에선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통과는 불발됐다. 아동복지, 노인복지 등 인권 문제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동물 복지까지 논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판단이었다.

정부 역시 관계부처 및 업계와의 조율 문제로 정부 입장을 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정부 입법을 단기간 내에 합의를 봐서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환노위 관계자는 "사실 동물원법은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다소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겠지만 법안 통과는 어려운 상황이다"라면서도 "미래를 생각할 때 반드시 필요한 법안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섯가지 자유' 누리는 EU동물…해외 '동물복지' 현주소

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사랑실천협회,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회원들이 각 대통령 후보자에게 동물복지정책 공약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및 릴레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문선 인턴기자 lovelymu@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사랑실천협회,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회원들이 각 대통령 후보자에게 동물복지정책 공약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및 릴레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문선 인턴기자 lovelymu@
지지부진한 국내 동물복지 논의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동물복지에 대한 법제화가 진행돼 왔다.

동물복지 선진국들은 단순히 학대를 금지하는 소극적 동물보호법은 물론이고 동물이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명문화했다. 애완동물 복지, 농장동물 복지와 운송, 군용동물 및 실험동물 관리 등 법제의 다양성을 확보한 것도 특징이다.

동물복지에 관해 가장 높은 수준의 원칙을 세운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동물에게 '다섯 가지 자유(Five Freedoms)'를 보장하는 것을 동물복지의 기본조건으로 정의한다. EU가 보장하는 '다섯 가지 자유'는 △기아·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동물이 굶주림을 면하는 수준을 넘어서 안락하게 사육받고 적절한 활동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애완동물을 굶기는 것뿐 아니라 산책시키지 않는 등의 행위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는 얘기다.
EU 가입국 중 영국은 동물복지법 제정에 관해 가장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1911년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한 이후 동물복지까지 포괄한 동물복지법을 1996년에 만들었다. 동물복지 문제를 담당하는 기구인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도 184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설립됐다.

미국의 경우 별도의 동물보호법은 없지만 동물수송, 도살, 입양 등 동물복지 향상과 관련된 연방법이 개별적으로 제정돼 있다. 동물의 역할과 상황에 따라 세분화·전문화된 법제가 특징이다.

동물을 휴식없이 28시간 이상 운송수단에 가둘 수 없는 '28시간법', 가축 도살 방식을 규제하는 '인도적 도살법', 수명·체력이 다한 군용동물을 사인에게 입양시키는 '군용동물 입양법' 등이 있다. 동물의 '복지'가 언급된 것은 1970년의 '동물복지법'. 미국에서 동물복지 문제가 법제화 된지도 벌써 45년이다.

일본은 동물학대에 대한 사회적 반성을 계기로 1973년 '동물 보호 관리법'을 제정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실험동물 복지원칙인 '3R'이다. '3R'은 실험동물 이외의 방법으로 대체(Replacement), 실험동물 숫자의 감축(Reduction), 실험동물의 고통 경감(Refinement)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동물복지국회포럼, 동물복지 선진국 도약대 될까

국회 여야 의원들이 '동물복지' 관련법 처리에 팔을 걷어붙였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중심으로 한 여야 의원 39명은 '동물복지국회포럼'을 발족하고 19대 정기국회에서 핵심 동물복지 법안들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동물복지국회포럼은 17일 국회에서 '우리나라 동물복지 정책의 현황과 동물복지 정책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를 갖고 국회에 계류중인 동물복지 관련법과 정부의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박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동물복지 관련 한 걸음을 떼어 놓고 최대한 성과를 내서 20대 국회에 어떤 의원이 들어오더라도 확실한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자는 것"이라고 포럼의 비전을 밝혔다.

동물복지국회포럼은 TF(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19대 국회에서 우선 처리해야 할 동물복지 관련법을 선별하고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문 의원에 따르면 19대 국회에 발의된 동물복지 관련 법안은 총 56개로 현재까지 10건이 통과됐다. 상임위 별로는 동물복지 주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총 30건이 계류중이다.

이번 포럼은 우리 사회 최대 약자로 꼽히는 동물의 복지 논의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시작됐다.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축사에서 "동물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선진도를 평가할 수 있다"며 "(포럼을 통해)동물 보호 활동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향후 동물복지 입법과제와 국회에서 동물복지 관련 법안 심사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의견도 제시됐다.

문정림 의원은 "동물 관련 법안 속 내용을 항목별로 묶어서 심의하고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며 "수십개 법안이 계류돼 있더라도 조항별로 묶어 심의하면 효율적으로 조정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 제4조에 따라 5년마다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종합계획에는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정착 △한국형 농장동물 복지체계 구축 △동물실험의 윤리성 제고 등 과제가 담겼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동물보호 정책 추진에 앞서 동물복지 관련 철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창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정부의 길고양이 대책 문제만 봐도 외국처럼 서식군을 유지하고 길고양이를 보호할 권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중성화를 많이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기본적인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정부로서는 소유자의 반려동물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는 쪽을 강조하고 있지만 강제적으로 될 일은 아니다"라며 "반려 동물 문화 자체를 양질의 문화로 갈 수 있는 홍보와 교육에 치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