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하르츠 개혁'…韓 '노동개혁' 모델 될까?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2015.08.11 05:55
글자크기

[the300][노동개혁, 미래와의 상생 ②:노동시장 이중구조(5)]'고용유연화'와 '삶의 질' 조화 과제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독일은 1990년대 높은 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 높은 복지비용이라는 삼중고 때문에 유럽의 병자로 불렸지만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유럽의 중심국가로 부활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시장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자 독일의 강력한 정부주도 노동정책인 '하르츠 개혁'을 언급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집권 여당 관계자들도 최근 들어 '하르츠 개혁'을 국내 노동시장 개혁의 모델로 언급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유럽의 병자' 獨…'하르츠 개혁'으로 대수술

유럽대표 선진국인 독일의 1990년부터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과거의 '서독'과도, 유럽 경제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독일'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1990년 갑작스런 통일 후유증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인근 국가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매년 두 자릿수에 가까웠다. 급기야 유럽 경제전문매체인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까지 지칭했다.



병자를 고치기 위해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간 독일은 2003년 슈뢰더 총리 주도로 노동시장개혁 청사진인 '아젠다2010'을 발표했다. 자동차 제조사인 폭스바겐 노무관리이사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를 통해 단계별로 노동시장을 변화시켰다.

개혁 책임자의 이름을 붙여 명명된 '하르츠 개혁'은 전일제 근로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당시 독일 고용환경에서 '미니잡·미디잡'으로 불리는 시간제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허용하는 계기가 됐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해 장기적으로 실업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역점을 뒀다.


실업자들은 직업알선센터가 제안하는 취업자리 수락과 고용훈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취업제의를 계속 거절하면 실업급여가 전액 삭감되도록 하는 방안도 하르츠 개혁으로 탄생했다.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고, 보다 유연해진 노동시장으로 실업자들이 뛰어들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마련한 것이 하르츠 개혁의 핵심이었다.

◇'하르츠 개혁' 오늘날 獨 경쟁력…노동자 삶 현저히 낮췄다는 불만도

하르츠 개혁이 독일에 가져온 가시적 성과는 놀라웠다. 한 때 12%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은 올해 2월 4.8%까지 떨어졌다. 재정부담이 컸던 실업급여는 실업률 감소로 점차 개선됐다.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 단위노동비용이 절감됐고 곧바로 제조업 경쟁력이 강화돼 수출이 증가됐다. 경상수지도 적자에서 대규모 흑자로 전환됐다. 부동산 가격 및 가계 부채의 증가폭도 주변국에 비해 현저히 낮아져 경제 전반이 안정됐다.

이 같은 안정된 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독일은 2007~2009년 금융위기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현재는 '유로존'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을 포함한 광범위한 국가적 구조개혁이 오늘날 독일의 경쟁력이 된 셈.

그러나 '하르츠 개혁'에 의한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는 '나쁜 일자리'를 확산시켰고 독일의 실질임금상승률의 증가를 억제한 요인이 됐다는 비판도 받는다.

소위 '미니잡'이 독일 노동자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트렸다는 불만은 최근 독일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제 도입, 파견 근로자 규제 강화 등의 법 개정을 진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르츠 개혁' 우리아 안 맞는다"VS"개혁 기조는 맞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독일과 우리의 상황이 다른 만큼 '하르츠 개혁'을 우리 정부의 노동시장개혁 '청사진'에 적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을 유연화 했다고 하지만 독일은 2013년 기준으로 OECD국가 중 고용보호지수가 여전히 가장 높은 나라다. '하르츠 개혁'은 고용 보호가 잘 된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그 유연성을 강화한 수준"이라며 "우리는 고용보장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더 유연화 하려는 움직임이라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 전문가는 "하르츠 개혁 당시 독일은 고용과 복지 수준이 너무 탄탄해 혈액을 공급하고자 대놓고 나쁜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며 "우리는 이미 만연해 있는 나쁜 일자리를 노동시장개혁으로 더 도입하자는 것이라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독일과 현재 우리의 노동시장 환경이 맞지 않다고 해도 노동시장 유연화 등 '하르츠 개혁' 기조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르츠 개혁'은 강력한 정부주도였고 상당히 많은 반발과 국민의 고통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개혁이 가야할 방향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일자리 다원화라는 글로벌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세부 내용은 달라도 '하르츠 개혁'의 기조는 우리와 동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