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일방적 희생' 넘어 '기득권 나누기'로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5.08.07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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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獨 하르츠 "노사 감당 한계선부터 논의해야"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절박한 어조로 역설했지만, 노동개혁은 '정권' 차원의 과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절망 속에 살아가고, 정규직은 과보호되는 양극화된 노동시장, 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실업자와 인턴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절망적 현실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개혁의 '수준'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근로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할 수도, 노동시장 안전성을 위해 기업들의 부담만 요구할 수도 없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문제를 방기할 수도, 기성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없다. 근로자와 기업, 청년과 기성세대가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 합리적인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 17년만에 최대 노동개혁



박근혜정부의 집권 후반기 최대 역점과제인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 제고다. 정규직에 대해선 유연성을 키우고, 비정규직과 실직자에 대해선 안전성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 △통상임금 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 △실업급여 확대 △비정규직 보호 강화 등이다.

정리해고 도입과 국민연금 확대적용을 중심으로 한 1998년 노동개혁 이후 17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개혁 작업이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선 임기 중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남을 수 있는 사안이다.

1990년 통일을 전후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던 독일을 '유럽의 엔진'으로 부활시킨 이른바 '하르츠(Hartz)법'이 정부가 벤치마크한 모델이다. 폴크스바겐의 인사담당 이사였던 피터 하르츠(Peter Hartz)가 노동개혁위원장을 맡아 입안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2000년대초 '아젠다 2010' 프로그램의 하나로 '하르츠법'을 시행했고, 그 결과 독일의 실업률은 10%대에서 4%대로 떨어졌다.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 방안과 마찬가지로 하르츠법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대표적으로 임시직 근로기간을 연장하고, 기간제 근로자 파견을 확대했다. 동시에 월급여 800유로(약 100만원) 이하 저임금 근로자도 사회보장 대상으로 삼았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 "돌아와라" vs "철회하라"

노동개혁의 핵심 쟁점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통한 임금피크제 도입과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 2가지다. 한국노총은 이를 '양대 불가 사안'으로 제시하고, 이 방안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노사정위원회로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하며 협상장을 떠난 뒤 아직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절벽'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노동계에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임금피크제가 조기 퇴직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업무부적격자 해고요건 완화에 대해서도 정부는 능력과 성과에 따른 고용체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고용불안' 우려를 들어 극렬 반대하고 있다. 일부 진보 경제학자들도 '해고요건 완화'가 근로자들의 '삶의 불안'을 초래해 소비심리를 위축시킴으로써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 "노사정 모두 양보할 자세 갖춰야"

관건은 정부가 한국노총을 노사정위원회로 다시 불러내기 위해 어떤 '당근'을 건넬 수 있느냐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공무원 임금체계를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한 '당근'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정부가 제시할 '유인책' 또는 '타협안'이 노사정위원회 재가동 여부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하려면 근로자 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들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며 "해고요건 완화처럼 지나치게 기업에 유리하고 근로자에겐 불리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도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서는 근로자 뿐 아니라 기업의 양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비정규직 보호 강화를 위한 차별시정제도 확대의 경우 기업이 추가로 부담을 져야 하는 사안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담화에서 발표한 '실업급여 인상'(평균임금 대비 50%→60%) 방안도 마찬가지다. 실업급여를 늘리려면 기업과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료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절감분을 고용보험료 인상에 활용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될 수 있다.

근로자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해서도 어느 수준까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은 "노동개혁을 위해선 노사가 각각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이 어디인지부터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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