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이기적으로 살아라, 나무처럼"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5.08.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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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났습니다] '나무 철학' 펴낸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새 책 '나무 철학' 펴낸 강판권 계명대 교수(54)./사진=김창현 기자새 책 '나무 철학' 펴낸 강판권 계명대 교수(54)./사진=김창현 기자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 이성복 시인,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1-나무인간 강판권' 中




나무처럼 살았더니 생의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됐다. 삶은 그렇게 나무를 닮아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방의 대학에 진학, 돈 한 푼 없이 인문학을 시작했던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54) 이야기다. 힘든 시절이 길었지만, 나무에 의지해 버텼다. 이에 감동 받은 이성복 시인이 그의 삶을 시로 쓰기도 했다.

강 교수가 최근 ‘나무철학’이라는 책을 냈다. 단풍나무, 자귀나무, 느티나무 등 나무의 속성을 인문학으로 풀어냈다. 공자, 맹자 등 중국의 철학을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먼 나무들의 특징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낸 책이다.



어쩌다 나무에 대한 인문학책을 쓰게 됐을까. “제 조건을 인식하고 교수되기를 포기했죠. 시간강사 생활을 하는 동안 무너져버렸던 제 ‘자존’을 다시 만들어 준 게 나무에요. 나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 이야기를 써야겠다 싶었죠.” 그에게 나무는 나무(樹)뿐만 아니라 목숨(壽)이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땄지만 오래도록 할 일이 없었다. 백화점 인문학 교실부터 대학교 강의까지 열심히 다녔지만, 돈은 항상 부족했다. 어린 딸 기저귀 살 돈이 없어서 아내는 천을 반으로 자르고 빨아 쓰며 돈을 아꼈다. 그래도 카드빚은 계속 쌓였다.

자존감은 끝이 어딘지를 실험하는 것처럼 나락으로 떨어졌다. 극단적인 생각마저 떠오르던 그때,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지게를 지고 다니던 젊은 시절의 그에게 땔감이 돼주고 쉴 그늘이 되어주기도 했던 나무. 나무에 대한 인문학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새 책 '나무 철학' 펴낸 강판권 계명대 교수(54)./사진=김창현 기자새 책 '나무 철학' 펴낸 강판권 계명대 교수(54)./사진=김창현 기자
그렇게 시작한 수학(樹學)이 올해로 14년째다. 그동안 ‘나무열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뜰에는 감나무, 들에는 느티나무’ 등 나무와 중국 철학을 엮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생물학적으로만 연구돼 온 분야에 인문학자가 들어오니 학계도 독자도 그를 반겼다. 애초에 포기했던 교수직이었지만 책 출간 이후 모교에서 그를 눈여겨봤고 그 결과 임용됐다. 이제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나무의 속성을 관찰하다 보면 인생에 필요한 지혜들이 보여요. 연애 문제만 봐도 그래요. 맨날 같은 말만 하는 남자·여자, 오래 보다 보면 서로 할 얘기도 없고 매력 없거든요. 그런데 나무는 사시사철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요. 살기 위해서.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꽃도 피우고 푸른 잎도 틔울 수 있는 거예요."

그는 ‘나무 철학’에서 나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철학들을 소개한다. 잎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떨어버리며 자신을 비우는 겨울의 갈잎나무의 모습을 통해서는 소통을 말한다. 키 작고 볼품없는 상수리나무를 보며 장자의 ‘곧은 나무는 빨리 잘리고, 단 우물은 빨리 마른다’는 지혜를 설명한다.

강 교수가 나무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이요. 나무처럼.” 뜻밖의 답이다. 나무의 속성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던가.

“내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그 이상의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게 나무의 삶이에요. 나무는 자기 삶을 살 뿐 인간이나 동물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주려고, 받으려고도 안 할 때 오히려 더 많이 주고받게 된다는 것. 나무가 주는 지혜죠.”

그는 나무 학문, 즉 수학(樹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꿈이다. 성리학 ‘공부론’의 깨달음처럼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학교라고 생각하는 그는 전국을 다니며 ‘나무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남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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