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가이드라인 노정 엇박자…노동개혁 키 국회로 가나(상보)

머니투데이 세종=우경희 기자 2015.08.0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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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개혁 논의 재개를 놓고 노동계와 정부가 또 엇갈렸다. 정치권의 개입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향후 개혁 추진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노동계가 해고규정 철회를 요구하자 정부는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맞불을 놨다. 극적 합의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일 고용노동부 산하 노동연구원은 저성과자에 대한 업무 재교육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저조할 경우 해고도 타당하다는 내용의 판례를 공개했다. 연구원은 이를 오는 4일 열릴 고용노동미래포럼에서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정부가 준비 중인 해고 가이드라인의 틀을 내놓은 것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노동계의 해고규정 철회 요구에 대한 거부의 뜻이기도 하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제노총 아태지역기구(ITUC-AP) 총회 참석차 출국하며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해고규정을 양보할 경우 노사정위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노사정 대타협 결렬 당시에도 노동계가 제시했던 안의 수준이지만 발언 시점을 볼 때 사실상 노동계가 정부에 손을 내민 것으로 읽혔다.

먼저 제스쳐를 취한 것은 정부 측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김 위원장을 전격 방문했다. 대타협 결렬 후 첫 방문이다.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이 장관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갔다"고 밝혔다. 특별한 제안도, 의견접근도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장관 방문 이후 노동계에는 이 장관이 일정 수준의 양보를 전제로 대화재개를 요청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노동계와 정부의 움직임이 바빠진 배경은 정치권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무능을 비판하며 노동개혁과 연관된 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일단 노동계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 한국노총은 최근 여야에 각각 새로운 협의체를 출범해야 한다는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어차피 노사정위서 결론을 낸다 해도 이후 여야 합의가 돼야 실행이 가능한 만큼 정치권의 움직임은 의미가 크다"며 "노정 간 대화가 노동계 압박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노사정위에 더 이상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느냐. 국회서 어떻게 의견이 정리되는지를 좀 지켜보고, 사회적 대화기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움직임을 활용하겠다는 것이 노동계의 속내지만 대화파트너인 정부를 제쳐놓을 수는 없다. 야당이 뜻대로 움직여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야당은 얼마 전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 의지를 보였지만 사실상 노동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정치논리에 의해 출범한 협의체는 활동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새 협의체가 출범한다 해서 노동계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지금 잠시 일선을 떠난 한국노총의 김 위원장과 휴가를 떠난 이 장관 복귀 이후 노사정 논의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장관은 지난주 휴가 기간 내 세종시를 떠나지 않았다. 4일 출장에서 복귀하는 김 위원장 역시 복귀 이후 의미있는 제스쳐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 판례 공개를 통해 노동계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노정이 주도하는 노동시장 개혁 논의는 당분간 접점을 찾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일단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노정의 큰 틀에서 논의가 진전돼야만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 수장 복귀 후 뭔가 다른 움직임이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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