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4억원, 기부에 중독된 '미스터 초밥왕'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5.07.2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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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당당한 부자 1-1]배정철 어도일식 사장, 가게 수익금 전액 사회 환원하는 '기부천사'

배정철 어도일식 사장은 "기부를 받은 사람의 웃음을 보는 그 희열, 그것에 중독되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며 웃었다. /사진=이기범 기자배정철 어도일식 사장은 "기부를 받은 사람의 웃음을 보는 그 희열, 그것에 중독되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며 웃었다. /사진=이기범 기자


"어도일식에 오시면 기부를 하시게 됩니다."

지난 23일 찾은 서울 논현동의 '어도일식' 입구에는 이 같은 표지판과 함께 사람 키만한 높이의 '기부함'이 놓여있었다. 1999년 배정철 사장(53)의 '첫 병원 기부'를 도와줬던 기부함이다. 당시 배 사장은 손님들이 1000원씩 내 모은 2400만원에 자신의 돈을 보태 만든 3000만원을 안면기형 어린이 치료에 써달라며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음식 기부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매년 3~4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매출 20억원 가량의 횟집에서 나오는 수익 대부분이다.

배 사장은 "남에게 기쁨을 주면, 그 사람이 고맙다며 진심으로 다가와서 인사하고 웃어줄 때 그 맛에 중독된다"며 "저는 이미 (기부에) 중독돼 빠져나올 수도 없고, 항상 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뭔가 참여하고 싶고, 남들에게도 기부를 전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부, 거창한 것 아니더라"
배 사장의 첫 기부는 전공을 살린 '음식'이었다. 어도일식에 채소를 납품하던 상인들이 '기부 선생님'이 됐다. 그는 "항상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실천이 상당히 어렵고 부담스러웠다"며 "가게에 채소 대주는 분들이 팔고 남는 물량을 장애인 시설에 전해주는 걸 보고 '이것도 방법이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 사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외곽지역의 재활원을 방문해 부식재료를 대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노인들을 가게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지금도 매달 400여명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재활원에 방문해 노래로 '재능기부'하는 무명 가수들을 보면서 기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그는 "지하철 타고가다 무거운 짐 든 할머니 부축해주듯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모두 기부다"며 "멀리 있는 사람 찾을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팔자를 바꿔줄 수는 없지만 마음을 주고 물질적 도움 가볍게 주는 게 기부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부식재료로 시작된 배 사장의 기부는 점점 늘어났다. 그는 그동안 서울대병원에 총 12억1500만원을 기부해 492명의 저소득층 환자를 도와준 것을 포함해 현재까지 50억원 넘는 돈을 저소득층 환자, 고학생,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해 기부해왔다. 이에 청와대는 2011년 7월 '국민이 직접 뽑은 나눔과 봉사의 주인공'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국세청은 같은 해 7월 아름다운 납세 대상을 수여했다.

배정철 어도일식 사장. /사진=이기범 기자배정철 어도일식 사장. /사진=이기범 기자
◇자살 결심 접게 만든 '어머니의 기도'
배 사장은 전남 장성에서 6남매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어머니가 이미 48세였기에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배 사장이 4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땅 한평 물려준 것 없이 빚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2살이 되던 해 농촌계량사업이 진행됐지만 슬레이트 지붕을 올릴 돈이 없어 온가족이 "일단 서울로 가자"고 결심했다. 서울에서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1때 학교를 자퇴하며 배 사장은 자살을 결심했다.


불우한 청소년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은 단칸방에서 밤새 기도하던 어머니였다. 배 사장은 "막내 좀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잘 모시고 좋은 가정 꾸리면서 나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돕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며 "지금도 그때의 약속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배 사장은 지금도 101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일식집 보조였다. 배 사장은 "100만원만 집에 갖다 주고 죽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150~200장씩 연탄을 갈면서 가스냄새를 많이 맡아 얼굴이 누렇게 떴다. 가게에서 먹고 자며 일했지만, 겨울에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다리에 동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배 사장은 주방장으로 일하던 1992년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어도일식이 부도나며 전 주인이 인수를 제안했다. 결혼한 지 이제 다섯 달 지난 새신랑은 돈이 없었다. 전 주인은 "가게를 살리고, 6개월 후에 대금 1억원을 치르라"고 했다. 배 사장은 6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잠도 잊고 가게를 살리고 인수 대금도 치렀다. 이때의 습관으로 배 사장은 지금도 새벽 5시 반에 시장에 들르는 것을 시작으로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일한다. 직원들은 교대근무 하지만, 스스로는 '연중무휴'다. 몰려오는 피곤함은 점심 손님이 빠진 시간에 토막잠으로 해결한다.

◇기부의 든든한 지원군 '가족'
끊임없는 기부는 가족의 뒷받침 없이 불가능하다. 배 사장의 일상은 철저히 어도일식에 맞춰져 있다. 집도 가게와 5분 거리의 아파트로 잡았다. 새벽에 집에서 나와 자정이 넘어 들어가는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23년 동안 이어왔다. 가족 식사도 1년에 서너번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가게로 가족들을 데려와야 가능하다.

배 사장은 "가족끼리 여행 한번 못가고 식사도 밖에서 제대로 못하면서 아내와 아이들도 서운함을 느끼지만, 집사람과 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 게 있다"며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재산은 불행의 씨앗이 되기에, 어도에서 번 돈은 여기서 끝내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한계를 알고, 번 돈 흥청망청 엉뚱한 곳에 안 써야겠다는 걸 저와 집사람이 미리 깨달아서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대신 배 사장은 매일 일하는 틈틈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다. 큰 포스트잇에 편지를 써 어머니와 아내, 대학생인 장남과 장녀, 중학생인 막내아들에게 전해주며 미안한 마음을 달랜다.

배 사장은 "어도에서 나온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은 평생,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지속하며 깨끗한 모습으로 사회에 귀감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또 "자식들이 제 생각을 이어나가준다면, 아이들 대에서도 기부와 함께 세상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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