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장관과 청소아주머니

머니투데이 서정아 부국장겸 경제부장 2015.07.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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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장관과 청소아주머니


회사 화장실에 메모 한장이 붙어 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붙인 것인데 “커피컵은 바깥 통에 따로 버려주세요^^”라는 메모다. 조금은 비뚠 손글씨에 ‘^^’(웃음) 이모티콘이 수줍게 붙어있다. 이걸 볼 때마다 엷은 미소가 번진다. 매번 휴지통에서 쏟아지는 종이컵을 빼놓기가 번거로웠을텐데, 그 의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져서다. ‘버리지 마시오’라는 명령어를 쓰기는 그렇고, 부드럽게 말하자니 것도 어려워서 젊은이들이 잘 쓰는 웃음 이모티콘을 쓰신 것 같다.

나는 요즘 별로 감동받는 일이 없다. 이념이나 자기만의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지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보여준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자기 일을 정성스레 하는 직업인들을 보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더라도 ‘내 일’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들 말이다.



최근에 본 영화 ‘소수의견’에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여기저기 유명 로펌에 원서를 넣지만 스펙이 안좋아서인지 다 떨어지고 국선 변호사를 한다. 그는 모두가 꺼려하던 사건을 맡는다. 건물이 철거될 때 경찰에 의해 아들을 잃고 분노에 눈이 멀어 경찰을 살해한 한 남자를 변호하는 것이다. 철거민의 상황에 깊이 들어간 변호사는 갖은 회유와 굴욕을 참고 국가를 대상으로 100원의 배상청구소송을 한다. 목숨값이 헐값이라는 점도 상징하고, 정부가 거부하기 힘든 안을 들이댄 것이다. 소위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변호사지만, 본인의 변호업무에 집중해 기발한 아이디어의 소송에 이르게 됐다.

메르스가 한창일 때 나를 사로잡은 사진이 하나 있었다.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의사들이 가운을 입고 벽에 기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의사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돼버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역시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소중한 자리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들 프로 직업인들의 노고가 메르스 확산을 막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며칠전 tv에 오랜만에 등장해 20~30대들을 순식간에 감동시킨 종이접기 전문가 김영만씨도 마찬가지다. 일본 유학시절 종이접기를 접하고 한국에 전파한 그는 20여년간 유치원 꼬마들이 청년이 되고 김영만 아저씨가 잊혀진 시간 동안 자기 일을 꾸준히 해왔다. 스마트시대에 한물간 종이접기선생님을 계속하기가 쉬웠을까.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은 있다. 더욱이 나랏일을 하는 '장관'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자리다. 그런 면에서 최근 장관들이 ‘다음 자리’ 찾기에만 열 올리는 것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A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재선의 성공’을 외치고, B,C 장관은 평일 낮에도 자신의 지역구 일이라면 열일 제치고 찾는다고 한다. D장관은 벌써부터 다음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모 기관을 들락날락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장관이 들썩이니 아래 공무원들도 일은 뒷전인 모양새다.

지금의 장관들에게 대단한 걸 바라는게 아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등을 겪으면서 예상보다 더한 그들의 무능력도 절감했다. 그런데 무능력과 무소신은 그렇다치고, 장관이라는 자리를 약력의 한 줄, 더 높은 지위를 향한 사다리로만 여겨서 되겠는가.


그들의 취임 첫 일성은 한결같이 “국민에게 꿈을 주겠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글쎄다. 2015년을 힙겹게 살아가는 국민에게 ‘막연한 꿈’을 남발하기보다, 자기 일부터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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