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진단과 과감한 비평으로 유명한 강헌 대중음악평론가가 생애 첫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냈다. 그는 "전복이 필요한 시대에 원초적인 본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냉철한 시선으로 정확한 진단과 분석으로 정평이 난 우리시대 최고의 대중음악평론가 강헌(53)이 낸 생애 첫 책이다.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내용은 좋은데, 안 팔릴 제목을 왜 달았을까.
책은 2년 전 대학로 ‘벙커1’에서 팟캐스트에 올릴 강의 내용을 모은 것으로 세계 역사에서 전복과 반전을 꾀한 음악의 역할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꾸몄다. ‘비평의 달인’으로 통했던 강헌은 이 책에서 비평보다 사실을 재구성해 한편의 논리를 완성한다.
‘천재 음악가’로 수식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이 왜 천재 월계관을 써야했는지에 대한 해석도 당시 유럽 역사와 정치 현실을 뼈대로 되짚어본다. 모두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이자 숨은 사실의 재발견인 셈이다. 그는 왜 이런 내용을 써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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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음악에 관심이 없죠. 더 정확히 말하면 ‘음악따윈 개나 줘버려’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음악 아니라도 놀 게 너무 많거든요. 게다가 젊은 세대에겐 살아내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에요. 여유있게 예술을 음미하고, 삶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게 점점 힘들잖아요. 비평가들의 역할은 또 어떤가요. 기껏해야 큐레이션 서비스하는 게 유일한 역할이죠. 이런 위기는 또 다른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전복’은 좀 심한 표현 아닌가 했더니, 그는 “전복이라는 말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게 안되면 반전이라도…”라며 웃었다.
“우리는 사실 전복과 반전의 역사죠. 하지만 서양 예술, 특히 음악 사회에서는 전복과 반전이 허용되지 않았어요.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음악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추상적 예술이어서 시간과 함께 금세 소멸하기 쉽죠. 그러니 건축이나 영화와 달리, 음악에서 특히 천재주의와 영웅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차르트는 음악 신동이 아니라 음악 머신이었을 뿐인데, 왜 그런 존재가 필요했을까. 그 시대와 시대 정신의 관계를 조명해서 허용되지 않았던 전복의 역사, 전복된 예술의 또 다른 권력화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재즈와 로큰롤에 이어 케이팝이 21세기 '전복의 순간'이 될 뻔했다는 강헌은 "정부와 기획사, 미디어가 합작으로 좋은 기회를 날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교환 효용성 없는 케이팝이 달라진 매체 환경 속에서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된 건 분명 획기적인 일이죠. 지난해 한국어를 배운 세계인이 연간 30만 명이고, 내년엔 4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시스템이 부족한 정부와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기획사, 우둔한 미디어 때문에 기회를 대부분 날린 셈이 됐어요.”
보수적인 권력에 기생한 음악은 전복과 반전의 영향력이 다른 예술에 비해 낮은 분야였다. 그런 음악이 전복의 선봉에 섰으니, 얼마나 극적일까. 저자는 “지금처럼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시대에 또 다른 전복의 음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금은 어쩌면 가장 깊은 터널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몰라요. 요즘 ‘먹방’에 몰입하는 세태를 보면 사람들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만 이끌려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있어요. 음악 시장 또한 그렇죠. 다양성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 70년대 선데이서울 수준보다 더 낮은 것 같아요.”
다양성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전복시킬 문화는 탄생할 수 있을까. 그는 “그런 부분에서 낙관적이어야한다”고 했다.
“30년 간 압축고도성장으로 놀라운 수준의 하드웨어를 가졌는데도,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만을 개탄할 수는 없잖아요. 낙관적이지 않으면 답 자체가 없으니까요. 전복할 수 없다면 반전이라도 나와야죠.”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지음, 돌베개, 360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