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자본통제 수위 높이나…ATM 현금 바닥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7.0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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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 현금고갈 1-2일 버틸 정도…ECB 압박 ELA 지속 여부 안갯속

그리스에서 자본통제가 2주째 이어지면서 금융시스템을 둘러싼 불안감이 고조됐다. 은행위기는 그리스 구제비용을 늘리는 요인으로 채권단과 그리스의 협상을 더 꼬이게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본통제가 그리스 국민들의 폭동을 부추겨 국민투표 승리에 도취된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스 은행협회에 따르면 지난 주말 현재 그리스 은행권에 남아 있는 현금은 10억유로(약 1조2460억원)밖에 안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예금 인출 속도에 따라 하루나 이틀 더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자본통제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 협상 불발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심화하자 지난달 29일부터 은행 영업을 중단시켰다. 그리스 정부는 당초 7일부터 은행 문을 다시 연다는 방침이었지만 그리스 은행협회는 8일까지 영업중단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리스 은행들이 곧 영업을 재개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리스 정부는 은행 영업을 중단 시키면서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을 통한 예금인출 한도를 하루 60유로로 제한했다. 또 해외 송금도 사실상 전면 금지됐다.



문제는 이같은 극약처방에도 은행권의 위기감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최대한 예금을 인출하려 하지만 한도인 60유로를 인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에서 텅 빈 ATM이 속출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하루 50유로밖에 인출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한 푼이 아쉬운 그리스 인들은 신규 예금은 물론 대출금 상환도 미루고 있다. 지난 1분기 말 현재 그리스 4대 은행 국내 대출 장부의 악성채권 비율은 32-39%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도 그리스 은행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ECB는 이날 정책위원회에서 그리스 은행의 생명줄인 긴급유동성지원(ELA) 프로그램 한도를 890억유로로 동결한 채 기존 지원분에 대한 담보비율을 인상했다. 그리스 은행들이 앞으로 추가 지원을 받을 여지가 줄어든 셈이다. WSJ는 그리스 은행들이 서서히 질식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은행권의 위험이 커질수록 그리스와 채권단의 추가 지원 협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현 상황이 지속되면 그리스 은행권에 최소한 100억유로가 투입돼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ECB가 언제까지 그리스 은행들을 지원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ECB가 ELA를 중단하면 그리스 은행권의 붕괴가 불가피하다.

FT는 이날 ECB 정책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사형집행인' 역할을 피하기로 맘을 먹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은행 붕괴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그렉시트)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한 ELA 중단 결정을 유로존 정치권에 미뤘다는 것이다. ECB는 그리스 은행이 지불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하면 ELA를 중단할 수 있는데 오는 20일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일은 그리스가 ECB 채무 35억유로를 갚아야 하는 날이다. 그때까지 유로존이 그리스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ECB가 그렉시트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자본통제에서 비롯된 그리스인들의 불만이 곧 폭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헤지펀드 발야스니 자산운용의 콜린 랭캐스터 선임 이사는 이날 블룸버그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48시간 안에 채권단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ATM의 현금은 바닥나고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동은 치프라스 총리가 정권을 잃거나 거국일치내각을 꾸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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