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치프라스 정면충돌…누가 이길까?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7.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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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그리스 국민투표 앞두고 치프라스 '강공'…메르켈 '복수' 촉각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사진 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그리스의 '그렉시트' 가능성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블룸버그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사진 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그리스의 '그렉시트' 가능성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블룸버그


오는 5일로 예정된 그리스의 국민투표를 앞두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정면충돌할 태세다.

현재 공세를 주도하고 있는 쪽은 치프라스 총리다. 그는 1일(현지시간) 국영TV 연설에서 유럽엽합(EU) 지도자들이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그렉시트) 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리스 유권자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리스 정부가 지난달 29일 은행을 폐쇄한 것도 국민투표를 의식한 '극단적인 보수세력'의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또 트위터에 "오는 6일에는 그리스 정부가 국민투표 후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 그리스 국민을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국민의 심판은 정부의 의사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국민투표에서 '반대' 결과가 나오면 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채권단과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달 27일 국제 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 조건으로 요구한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며 협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결국 그리스를 배제한 채 구제금융 연장 거부를 결정했다. 이로써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마지막 지원분 72억유로를 남긴 채 지난달 30일 종료됐다. 이 결과 그리스는 같은 날 만기가 돌아온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5억유로를 갚지 못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그렉시트가 머지않았다는 우려가 고조됐다.

위기감이 커지자 치프라스 총리는 다소 유연한 자세로 돌아서는 듯 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유로존에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한편 1일에는 채권단에 보낸 서한에서 구제금융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날 긴급회의에서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을 계속하기로 한 결정과 맞물려 금융시장에서는 그리스 낙관론이 급부상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는 불과 몇 시간 뒤 연설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치프라스 총리의 변덕은 유로존을 당혹스럽게 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신속한 협상 재개와 합의를 촉구한 게 무색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사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복잡해졌다며 유로존의 일부 관리들은 이날 치프라스 총리의 발언을 '그렉시트 선언'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젠 메르켈 총리가 '복수'에 나설 태세라고 했다. 그가 최근 공개적인 발언은 피하고 있지만 이미 단호한 태도로 치프라스 총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필사적으로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려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가 협상은 국민투표가 끝난 뒤라야 가능하다는 게 메르켈 총리의 입장이다. 치프라스 총리의 이날 강경 발언도 협상 재개 노력이 좌절된 데 따른 반발 심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도 이날 전화회의 뒤에 발표한 성명에서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끝날 때까지 추가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의 요세프 야닝 연구원은 "메르켈 총리가 치프라스 총리를 강하게 쥐어짜고 있다"며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로) 자신을 쥐어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메르켈 총리의 '복수'가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야닝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지금 당장 협상이 재개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리스가 EU를 얕보지 못하도록 담금질을 해둬야 향후 협상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메르켈 총리의 연정 내부에서는 이 기회에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유럽 통합론자인 메르켈 총리는 변함없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 집권 다수당인 기독교민주당(CDU)의 한 하원의원은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끝나면 메르켈 총리가 수화기를 들고 합의를 위한 노력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국민투표를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며 투표 결과 찬성이 나오면 치프라스 총리를 압박해 굴복시키거나 사퇴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그러나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와도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기 위해 협상을 재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치프라스 총리가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이런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이다.

ECFR의 야닝 연구원은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 '반대'가 나와도 EU가 맞물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그리스가 아르헨티나처럼 멀리 떨어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유럽은 그리스를 놔두고 문을 닫아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 매체 유로투데이(euro2day)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그리스 국민 1000명 가운데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답한 이는 47%로 반대 의견(43%)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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