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파장 일파만파…더 멀어진 구제금융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5.07.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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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IMF 자금줄 끊겨 그리스 지원 명분 약해져…ECB 긴급유동성지원 중단 가능성도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현실화하면서 그리스 사태가 새 국면을 맞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에 실패하면서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 지원 가능성이 더 희박해졌다고 지적했다.



게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그리스가 이날이 만기인 채무 15억유로(약 1조8698억원)를 상환하지 못했다며 그리스의 '연체'(arrear) 사실을 집행이사회에 알렸다고 밝혔다. 그는 그리스가 연체를 해소한 뒤에야 IMF의 자금 지원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그리스는 2001년 짐바브웨 이후 처음으로 IMF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 지금까지 IMF 채무 상환에 실패한 나라는 짐바브웨와 이라크, 수단, 소말리아 등이 있다.



그리스가 IMF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것은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연장 없이 이날 종료되면서 72억유로의 마지막 지원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이 지난 주말 그리스의 구제금융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유로그룹은 이날 열린 긴급회의에서도 구제금융 연장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IMF는 그리스의 채무 상환 실패를 '연체'로 규정했지만 이는 사실상 디폴트를 의미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IMF 관리들도 용어만 다를 뿐 '연체'는 디폴트와 같은 의미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IMF의 라이스 대변인은 다만 IMF 이사회가 그리스의 채무 만기 연장 요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IMF가 원래 채무 만기 유예를 인정하지 않지만 1982년 남미의 가이아나와 니카라과가 IMF와 채무만기 연장 협상을 벌인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IMF 이사회도 의결권 지분 70% 이상의 동의를 전제로 채무 만기를 최대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동의하면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신용평가사들은 민간 채무에 대해서만 디폴트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스의 IMF 채무 상환 실패는 디폴트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IMF 채무를 갚지 못한 데 따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장 그리스는 IMF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IMF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주도한 '트로이카'의 일원이다. IMF는 자금뿐 아니라 재정 및 경제재건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에도 참여해왔다. 그러나 그리스의 채무 연체가 장기화하면 IMF는 순차적으로 채무 상환을 독촉하다가 그리스의 회원국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더욱이 그리스 최대 채권국인 독일 등은 IMF의 참여를 그리스 지원의 중요한 명분으로 삼아 국내 비판 여론에 대응해왔다. IMF가 발을 빼면 그리스 지원 동력이 크게 약해지는 셈이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제이콥 펑크 키르케가르드 선임 연구원은 IMF가 참여하지 않으면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에 대한 새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마련하려면 유로존 모든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특히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연방하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키르케가르드는 또 "그리스가 우리가 보통 실패한 국가로 여기는 국가군에 합류했다"며 "이는 매우 극적인 상징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IMF 채무 상환에 실패한 첫 선진국으로 연체 규모도 IMF 역사상 가장 크다. 그리스는 IMF의 최대 채무국으로 갚아야 할 원금만 350억유로에 이른다. 2010년 이후 2차례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데 따른 것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는 55억유로다. 지금까지 IMF 채무 상환에 실패한 나라 가운데는 수단이 1980년대 채무 14억달러를 여전히 갚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크,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이 빚을 갚지 못했다가 나중에 모두 상환했다.

NYT는 그리스 은행들의 생명줄인 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 프로그램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ELA 지원은 지불능력이 있는 은행에만 허용되는데 그리스 정부가 디폴트 상태가 된 이상 이 나라 은행의 지불능력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ECB는 그리스 국채를 ELA의 담보로 삼는다. ECB 정책위원회 위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ELA 확대에 제동을 걸 수 있다.

NYT는 IMF 채무 상환 실패로 그리스에 대한 다른 채권자들의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스가 다른 유로존 채권국과 합의한 바에 따르면 그리스가 IMF 채무 상환에 실패하면 채권국들이 1310억유로에 이르는 채무에 대한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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