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공자 아이디어?

머니투데이 홍찬선 CMU 유닛장 2015.06.2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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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이코노믹스]<4>“아담 스미스는 공자 사상을 표절했다”

편집자주 세계 문명이 아시아로 옮겨오는 21세기에 공자의 유학은 글로벌 지도이념으로 부활하고 있다. 공자의 유학은 반만년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하며 DNA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에 공자라면 얽히고설킨 한국 경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해답을 찾아본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다음의 2개의 문장을 서로 비교해 보자.

#1. “개인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의도하는데 그 의도의 일부가 아닌 목적을 증진시키도록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다. … 모든 개인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각자가 실제로 사회의 이익을 촉진하려고 의도할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촉진한다.”

#2. “물건이 싸면 비싸질 조짐이고 비싸면 싸질 징후라서, 각자 자기 업(業)을 좋아하고 제 할 일을 즐거워한다. 이는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밤낮 쉴 새가 없다.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구하지 않아도 백성이 만들어 낸다. 이것이 어찌 도(道)와 부합되는 ‘자연지험(自然之驗)이 아니겠는가.”



‘보이지 않는 손’의 원조는 공자의 ‘無爲而治’

첫째 문장은 1776년에 출판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고, 둘째 문장은 BC 100년 경에 쓰여진 쓰마치엔(司馬遷)의 『사기(史記)』 에서 볼 수 있다. 약 1800년 정도의 시차가 있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개인들의 이익추구에 맡겨 놓으면 (국가가 나서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나 ‘자연지험’에 따라 공동의 이익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바로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영국의 현대사상가인 레슬리 영은 이를 두고 “사마천은 (애덤스미스를 직접 고취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참된 애덤으로, 참된 스미스로 알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시장의 도: 사마천과 보이지 않는 손’, 1996.1).

영의 이런 분석은 스미스가 『경제표』로 유명한 프랑수아 케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케네는 『경제표』(1758)에서 “농업적 부의 생산 유통 분배 소비 재생산은 시장의 자연법에 따르도록 ‘자유롭게 방임(Laisses-faire)’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와 사마천의 자연지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적 근원이 공맹(孔孟; 공자와 맹자)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1767년(74세)에 출판한 『중국의 전제주의』에선 자기 이론이 공맹에 있음을 밝혔다.

『국부론』을 케네에게 헌정하려고 했을 정도로(케네가 국부론 출판 전에 사망해 헌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를 존경했던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냈다. 케네의 ‘자연적 질서’, 사마천의 ‘자연지험’, 공자의 무위이치를 이어받은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끝까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는 스미스가 죽은 지 200여년이나 지난 요즘에도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이유다.


스미스의 잘못된 ‘공자 표절’, 경제불균형 문제 해결 못해

‘스미스의 표절’은 표절로만 끝나지 않았다. 공자의 무위이치와 사마천의 자연지험에서 ‘보이지 않는 손’만 받아들이고,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 공자의 ‘균제(均齊)’와 ‘자연사랑’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공자는 무위이치의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도,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물적 사회적 도덕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을 강조했다. 또 민생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가벼운 세금’과 양극화를 억제하기 위한 균형분배정책도 함께 중요시했다.

공자는 균형분배를 계속해서 거론했다. “백성이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불균형을 걱정하며(不患寡而患不均)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불안정을 걱정해야 한다(不患貧吏患不安定)”(『논어』 ). “많은 것을 덜어 내어 적은 곳에 보태고(裒多益寡) 저울질을 바르게 하여 고르게 베푼다(稱物平施)”(『주역』 겸괘(謙卦) 대상전). “돈을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돈을 고르게 나누면 백성이 모인다(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대학』) 등이 그것이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공자의 아이디어였음을 밝히고, 균제와 자연사랑도 함께 이어받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개인의 이기심만 강조하며 자연을 파괴하면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경제학의 오류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1920년대의 대공황과 2000년대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공자 DNA’ 풍부한 한국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성이다. 유럽의 17~18세기 지식인들은 공자를 ‘표절’해서 근현대 유럽을 선진국으로 이끈 철학사상과 경제학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자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조선은 심학(心學) 및 예학(禮學) 중심의 성리학에 빠져듦으로써 스스로 무너졌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으로 나라는 결딴났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포로로 잡혀갔다. 결국 일제 침략을 받고 나라마저 잃고 말았다. 36년 동안의 망국에서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는 아예 공자를 없애버렸다. 역사가 단절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우리 자신의 현대철학과 경제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제 스미스와 서구경제학자들이 잘못 표절했던 공자를 제대로 온고(溫故)함으로써 21세기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중국이 공자에서 새로운 ‘중화민국중흥의 길’을 찾고, 미국과 유럽 학자들이 ‘글로벌 위기’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공자를 연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공자 DNA’에서 케네나 스미스보다 훨씬 뛰어나다. 현대의 유럽과 미국은 물론, 문화대혁명 때 공자타도에 나섰던 중국보다도 한발 앞선다. 중국은 자국에서 끊겼던 팔일무(八佾舞)와 석전대제(釋奠大祭) 등을 한국에서 배워가는 실정이다. 성장과 복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치경제학은 한국에서 꽃피울 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노력이 뒷받침되면 말이다.

(이 글은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황태연 김종록, 김영사, 2015. 5)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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