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 '잠재적 표절도 표절'…신경숙의 '모르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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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팩트] '잠재적 표절도 표절'…신경숙의 '모르쇠'


대중음악계에선 세계 3대 표절 시비 사건이라는 게 있다. 조지 해리슨, 존 레넌, 그룹 버브가 그 주인공이다. 시비 대상자 중 비틀스 멤버가 2명이나 속해있다. 홈런 많이 치는 선수가 삼진도 많이 당하는 형국이랄까.

이 가운데 조지 해리슨 사건은 전반적인 표절 시비에 대한 ‘어떤 해결책’ 또는 ‘나름의 준거’를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회자된다.



조지 해리슨이 쓴 곡 ‘마이 스위트 로드’(My Sweet Lord)는 시폰스(Chiffons)의 1963년 작품 ‘히 이즈 파인’(He is Fine)을 베껴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해리슨은 의도적으로 베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잠재적 표절’도 표절이라며 시폰스의 손을 들어줬다. 해리슨은 ‘암묵적 해결’의 대가로 40만 달러를 배상금으로 내놓아야했다.

콘텐츠가 쌓이고 쌓여, 더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는 세상에서 표절은 시비만 있고 해결은 없는 게 ‘상식’처럼 통한다. 국내 대중음악계에 그토록 많은 표절 시비가 난무해도 ‘해결’된 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한 끝 차이의 교묘한 베끼기는 표절과 창작을 나누는 아슬아슬한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문학계 표절 시비라고 다를까. 작가 이응준이 선배 신경숙을 향해 던진 ‘표절 시비’가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신 작가가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일부 내용을 자신의 단편소설 ‘전설’에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 이 작가의 주장이다. 이 작가가 자세하게 적은 구체적 표절 시비 내용을 보면 구성과 문체, 내용이 흡사하다는 느낌을 ‘즉각적’으로 받게 된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 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중에서)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 이었다.~”(신경숙의 ‘전설’중에서)


파문이 커지자, 신 작가는 출판사를 통해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다.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며 “나를 믿어주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일부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글이 일본 작가의 그것과 일정 부분에서 ‘우연히’ 겹칠 수 있는 문제를 비화한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표절 시비의 본질적인 태동은 당사자 중 어느 한 사람은 반드시 ‘유명해야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책의) 판매량도 적고 인지도도 떨어지는 대상이라면, 표절 시비가 붙어도 ‘없던 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유명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신 작가가 자신은 그 책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억울하게 항변해도, 법적·도덕적 사슬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

표절 시비 당사자들은 마치 관행처럼 대부분 “몰랐다”고 항변한다. 그 말 자체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잠재적 표절’이 표절 진의의 한 범주로 인식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모르쇠’가 아닌 잠재적 표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 작가를 몰라도, 내용의 결과물이 비슷하다면 ‘인정’ 뒤 ‘해명’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신 작가는 특히 15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파문이 커지자 “인용은 죄송, 표절혐의 이해할 수 없다”는 해명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표절 즉 저작권 침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낮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모든 창작의 결과물이 세계에 실시간으로 ‘공용’되는 지금 시대에선 작은 인용이나 베끼기는 법정 다툼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된다.

최근 네티즌들은 신 작가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도 표절 시비 내용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다. 결국 이 문제의 열쇠는 일본 작가가 쥐고 있다는 얘기다(불행히도 미시마 유키오는 고인이다). 일본 작가가 한국의 대표적 문인이 겪고 있는 소동에 귀 기울여 내용을 확인한다면 소송을 바로 걸 수 있는 사안이다.

흔히 ‘저작권 침해 사건’은 버티기 게임 이라고들 한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잊힐 수도 있고, 법정까지 가더라도 무죄를 선고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정’(그것이 잠재적 표절이라고 하더라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응책으로 비칠 수 있다.

신 작가 그런 고도의 전략가인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정상의 여류 작가가 반복되는 표절 시비의 ‘글’ 앞에서 양심적인가 하는 것이다. 신 작가에게 묻고 싶다. 그는 ‘잠재적 표절’도 표절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가, 아니면 ‘잠재적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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