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선택의 문제"…'야자' 후 밤샘 개발도 행복해요

머니투데이 강미선 기자, 김지민 기자 2015.06.1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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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지자 대한민국! 미래 희망 키우는 새싹]<1>청년창업? '낭랑18세'에 창업 준비하는 무서운 아이들

편집자주 청소년을 미래의 희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입시전쟁, 스펙 전쟁에 내몰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성공의 기준을 좇기에 급급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본지는 창사 16주년 및 오프라인신문 창간 14주년을 맞아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는 청소년 3개 그룹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목차]
<1>청년창업? '낭랑18세'에 창업 준비하는 무서운 아이들
<2>10대 화이트해커 "우리는 미래의 사이버 보안 사령관"
<3>글로벌? 우리는 우주로 달린다…美우주대회 1등 韓고교생들

"대학은 선택의 문제"…'야자' 후 밤샘 개발도 행복해요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마치고 밤 10시에 귀가한 고등학교 3학년 이영민군. 밖은 캄캄하지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컴퓨터를 켜 메일을 확인하고 팀원들과 메신저로 프로젝트 진행 상황 등을 점검한다. 가을 출시를 앞둔 서비스 때문에 1분 1초가 금쪽같다. 본인이 맡은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다 보니 새벽 4시. 두어 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등교 길에 나선다. 몸은 으스러질 듯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청년실업률이 IMF 경제위기 이후 최고치에 도달한 2015년 대한민국. 누구보다 일찍 제 갈 길을 찾아 나선 겁 없는 10대들이 있다. '대학입학-대기업취업'이라는 도식적인 길을 따라가기보다 창업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청소년들이다. 너무 불확실한 미래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믿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SK플래닛이 주최하는 ‘스마틴 앱 챌린지’ 등 고교생 창업경진 대회에서 수상하며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는 예비CEO(최고경영자) 18세 청소년 3명을 만났다. 1997년 IMF 외환위기에 태어난 이들이다. 1년 앞서 고교 졸업 후 대학 대신 취업을 택한 선배도 함께 자리해 고민과 희망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진)왼쪽부터 이영민, 김해슬, 노세호, 박정현씨<br>
/사진=이동훈 기자↑(사진)왼쪽부터 이영민, 김해슬, 노세호, 박정현씨
/사진=이동훈 기자
[참석자]
박정현(18·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3학년)
이영민(18·속초고 3학년)
김해슬(18·계원예술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1학년)
노세호(19·선린인터넷고 졸업, SK플래닛 2015년1월 입사)


#대학? 대기업?…"인생 노(No) 답…내가 가는 게 길"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 달라.


↑박정현(18·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3학년)씨<br>
/사진=이동훈 기자↑박정현(18·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3학년)씨
/사진=이동훈 기자
▶(박)학교 다니면서 솔루션 웹개발 회사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기 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경영 등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서예요. 경진대회와 같이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에서 도전을 계속 하고 있어요. 2012년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전국대회에 나가서 은상을 받았고 그 다음 해 스마틴앱챌린지에서는 가작을 수상했어요. 작년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창업경진대회에서는 은상을 탔고요.

▶(이)또래 고교생들과 '태그랩(Tag lab)'이라는 회사를 만들었어요. 창업진흥원 누림터에 사무실을 꾸려 주말마다 상경해 회의를 하면서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진대회 도전을 하려고 해요. 2009년에 강원도 교육청에서 IT꿈나무들에게 주는 교육정보기술 표창장을 받은 후로 자신감도 생겼고요. 작년에 강원교육과학정보원 앱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어요.

▶(김)고등학교 때부터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바로 생각을 실천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고 계획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일단 대학에 왔어요. 내년 쯤 친구들과 작게라도 창업하고 싶어요.

▶(노)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컴퓨터 만지는 게 좋았어요. 고3때부터 몇 군데 IT업체에서 인턴을 했고 졸업 후 바로 SK플래닛(플랫폼소프트웨어1팀)에 입사했어요.

-현재 준비 중이거나 생각 중인 창업 아이템은.

▶(박)5명으로 구성된 '리그유(LeagueU)'라는 창업팀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데 올해 창업경진대회 참가 이후 아예 사무실도 차리고 법인을 설립하려고 해요. 대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서비스를 아직 밝힐 수는 없고요.

▶(이)'태그랩'에서 준비 중인 서비스는 아르바이트(알바)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면접 및 근무 후기 등을 남겨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예요. 저도 알바를 해 본 적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알바생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게 목표예요. 알바생들만 알고 있는 팁 같은 걸 올려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죠. 우리 나이 때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적합한 서비스라고 생각했어요. 장기적으로는 게임 개발을 하고 싶어요.

↑이영민(18·속초고 3학년)씨<br>
/사진=이동훈 기자↑이영민(18·속초고 3학년)씨
/사진=이동훈 기자
-초중고·대학교·취직,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길 대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이유는.

▶(박)선택의 문제죠. 공부하고 대학가서 좋은 직장 가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러 컴퓨터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접했는데 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거의 독학으로. 중학교때부터는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차곡차곡 통장에 2000만원쯤 돈도 꽤 모았어요. 신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이)인생에 답이 있겠어요(웃음). 저희 팀원들과 고민하고 얘기하다보면 너무 즐거워요.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을 하는 거잖아요. 차린 회사가 망하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걱정 안해요. 그게 좋은 경험이 될 테고 또 계획을 세울 수 있겠죠. 창업을 먼저 했을 뿐 필요하면 대학에 갈 거예요. SW쪽으로 좀 더 배워보고 싶어요.

▶(김)창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기업에 들어가면 내 아이디어를 온전히 상품화하거나 실행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 전체가 추구하는 게 있고 윗사람들 생각도 맞춰야하고.

▶(노)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물론 회사에 오니까 또 다른 종류의 공부를 더 많이 해야지만. 최종학력이 고졸이어서 지금이라도 학위를 위해 대학 가는 게 어떠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 그럴 생각은 없어요.

#부모, 친구, 학교… 나를 만든 건 8할이 ○○○

↑(사진)왼쪽부터 박정현, 김해슬, 이영민, 노세호씨<br>
/사진=이동훈 기자<br>
↑(사진)왼쪽부터 박정현, 김해슬, 이영민, 노세호씨
/사진=이동훈 기자
-어린시절은 어땠나. 지금까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된 게 있다면.

▶(박)중1 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같이 앓았어요. 그 때 아는 형이 여러 모임에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많이 접하도록 도와줬어요. 그 때의 경험들이 지금 제가 팀을 꾸리고 창업경진대회에 나가고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음악, 운동, 과학 등 다양한 체험을 많이 시켜주셨어요. 여러 가지 하다 보니 나와 맞는 걸 알게 됐어요. 중학교 들어가면서 철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때 결정적으로 '나의 길'을 고민하게 된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로 가면 평탄할 수 있지만, 나만의 인생 이야기를 쓸 때 채울 게 있을까 싶더라고요.

▶(김)초등 고학년 때 부모님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라는 책을 사주셨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인데, 그 때부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내 관심이 무엇인지, 보다 '나'에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노)고등학교(선린인터넷고) 입학이 가장 컸어요. 해킹을 하는 애가 있고 프로그램을 짜는 애가 있고...다들 개성에 따라 좋아하는 걸 하는 거예요. 놀라웠죠. 내가 인문계 고에 갔다면 과연 경험할 수 있었을까. 외부활동이나 전시도 많고, 강의도 많이 들으면서 눈이 뜨였어요.

#팀원들과 프로젝트 짤 때 가장 행복…'군 입대'가 걱정

-진로나 창업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이)군 입대 문제가 가장 커요. 군대 가면 머리 굳는 게 느껴진다고 선배들이 많이 그러던데. 걱정이 돼요.

▶(박)대학 안가고 창업을 하면 곧 군대를 가야해요. 창업은 병역특례가 안되거든요. 한국 현실에서 입대는 당연한 거지만 주위 창업을 준비하는 또래 친구들도 이 고민이 가장 크더라고요.

-요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박)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밤새 프로그램 개발이 완료 됐을 때, 결과를 보면 뿌듯하고 즐거워요.

▶(김)역시 예비CEO는 다르네요. 저는 여전히 주말에 먹고 쉴 때가 제일 행복해요. 대학 오니까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해요.

▶(이)요즘은 창업한 팀원들 만날 때가 가장 좋아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상사 입장이라서 그런 건가요? 부려먹을 수 있어서?(웃음) 제 생각엔 혼자 고민할 때 보다 같이 일하니까 흥이 나는 거 같아요.

#한국 교육…"깔 거 많죠"

-한국 학교과정 중에 가장 고쳤으면 하는 부분은.

▶(이)'깔 거' 많죠(웃음). 모두 공통과정이잖아요. 기초교육은 다 필요하다고 보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면 애들이 하고 싶은 걸 시켜줘야 하지 않나요. 근데 다 같은 걸 배우고 있어요. 물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개성이 다른데 그걸 스스로 찾고 각자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노)곳곳에서 취업하기 힘들다고 하고 학생들도 대학 이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데, 여전히 선생님들은 일단 대학에 먼저 들어가서 고민해라라고 하는 것 같아요. 현실은 더 이상 그렇지 않은데 아직도 대학만 가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정부가 SW 의무교육을 추진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노세호(19·선린인터넷고 졸업, SK플래닛 2015년1월 입사)씨<br>
/사진=이동훈 기자↑노세호(19·선린인터넷고 졸업, SK플래닛 2015년1월 입사)씨
/사진=이동훈 기자
▶(이)학교 컴퓨터교육은 허점이 많아요. 위에서 시키니까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도 끌려가게 되잖아요. 차라리 애들이 하고 싶은 걸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활성화한다든가 그런 식이면 좋겠어요.

▶(박)미래는 로봇시대라고 하잖아요. 단순 노동에 있어서 인간보다는 컴퓨터가 훨씬 잘하거든요. 그렇다면 인간은 로봇이나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걸 해야겠죠. 좀 더 창의성 교육을 강화해서 생각하는 힘, 아이디어를 끌어내서 구체화하는 능력을 키워줬으면 좋겠어요.

▶(노)의무교육이 나쁜 건 아닌 거 같아요. 성적으로 나오고 또 줄을 세우는 수단이 되는 게 걱정스럽죠.

▶(김)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우는 게 다 학문이잖아요. SW는 바로 응용가능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을 높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들고 싶은 회사?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

-어떤 CEO가 되고 싶은가.

▶(박)학교 동아리나 창업경진대회 팀 활동을 할 때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팀장이 팀원보다 몇 십 배 훨씬 더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창업하면 힘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구성원 중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이)아직 동아리 수준의 창업이라서 그런 거창한 철학 같은 건 없어요. '내가 진심으로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회사라고 해주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김)어린 나이에 창업을 꿈꾸는 학생 많잖아요. 부모 반대도 크고, 얘기하기도 쉽지 않아요. 청소년이나 어린 학생들이 창업에 대해 얘기할만한 공간이나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긴데요. 지금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는 학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좋아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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