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당할 것을 알고도 사랑하라

머니투데이 권성희 부장 2015.06.0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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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최근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었다. 대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는 등 녹록치 않은 일들을 경험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은 살아오며 겪은 어떤 일보다 타격이 컸다. 하지만 정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믿었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이 일과 관련한 사회집단에서 절친하다고 믿었던 지인이 몇 명 있었다. 그 가운데 곤경에 처한 나를 따뜻한 관심으로 위로했던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이 일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한 사람은 변호사 자문까지 받아가며 매섭게 공격해왔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여러 차례에 걸친 간곡한 부탁을 무응답으로 거절했다. 이런 지인들의 반응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름대로 그들에게 선의를 베풀어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수 당할 것을 알고도 사랑하라


그들에게 쏟은 시간과 정성을 생각할 때 나에겐 당연히 기대하는 반응과 위로의 수준이 있었다. 때문에 그 기대가 처참히 깨졌을 때 느낀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 일부는 뒤늦게 의례적인 위로의 문자를 보내왔지만 “지금까지 너와 쌓은 관계를 생각해 예의를 갖춰준다”는 식의, 마음 없는 빈말이 더 상처였다. 어떤 분에게 이 일을 말씀드렸더니 “이미 그 집단에서 빨간줄이 그어졌고 가까이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그들이 뭐하러 너에게 마음을 쏟겠냐”며 “어려운 상황에선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오로지 혼자”라는 말을 해줬다.

이 일을 겪으며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가 생각났다. 미리엘 주교는 갓 출소해 갈 곳 없던 장발장을 재워줬지만 장발장은 은그릇을 훔치는 것으로 미리엘 주교의 친절을 배신한다. 하지만 호의를 배반당한 미리엘 주교가 경찰에 잡혀 온 장발장을 향해 보인 반응은 분노나 경멸이 아니라 은촛대까지 함께 주는 상상할 수 없는 용서와 호의였다.



미리엘 주교는 어떻게 자신을 배반한 장발장을 품에 안을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범죄자인 장발장을 믿고 재울 수 있었을까. 그가 어떤 해코지를 할지 알 수도 없는데.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 미리엘 주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발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선의를 선의로 갚을 수도 있지만 악의로 배신할 수도 있음을.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엔 약한 존재이기에 사람 사이의 신뢰는 깨지기 쉬운 유리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리엘 신부의 은그릇을 훔치는 장발장을 비난하지만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이 다른 사람들의 친절을 무시하거나 배반하며 은그릇을 훔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는 배신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예수의 애제자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고 3번 부인하는 사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베드로가 배신할 것을 알고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배신할 것을 알고도 끝까지 베드로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한 농부가 아들에게 옆집에 가서 낫을 빌려 오라고 했다. 이웃은 낫을 빌려주지 않았다. 얼마 뒤 이웃이 찾아와 낫을 빌려달라고 했다. 농부는 아무 말 없이 낫을 빌려줬다. 아들이 기가 막혀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이웃은 우리에게 낫을 빌려 주지도 않았는데 왜 빌려주는 겁니까” 농부가 아들에게 대답했다. “낫을 안 빌려줬다고 나도 빌려주지 않으면 그건 복수다. 낫을 안 빌려줬지만 그럼에도 나는 빌려준다고 생각하고 빌려준다면 그건 증오다. 낫을 안 빌려줬던 일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낫을 빌려주면 그건 사랑이다.” 농부의 이웃은 이후에도 낫을 빌려주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일도, 미래 일도 생각하지 않고 백지 같은 마음으로 낫을 빌려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주위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일 자체보다 그 일과 관련된 사람 때문에 더 절망하는 모습을 본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복수가 사실상 어렵거나 자신에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마음으로 불같이 증오한다.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시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면 우리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불신의 벽을 쌓아올려 감옥 같은 인생을 살게 될 뿐이다. 언제 누가 배반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라. 배반당할 것을 알고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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