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5.06.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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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82>

[박정태 칼럼]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 매는 주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 중심은 무너진다 / 오직 혼돈만이 지상에 만연한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쓴 재림(The Second Coming)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들 두려움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든 광경인데,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에 사로잡혀 정부 발표마저 듣지 않는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딱 이렇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위기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미 메르스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3차 감염자가 확인됐으며, 격리대상자는 1600명을 넘어섰다. 전염에 대한 공포로 초등학교와 유치원 500여 곳이 휴업에 들어갔고 학원은 문을 닫았으며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사라졌다. 정부의 허술한 방역 체계와 무능한 대처가 한몫을 했지만메르스와 관련된 괴담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불안과 공포는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 지금 하나의 유령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유령은 메르스가 아니라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무서운 두려움이라는 전염병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를 통해 사람들은미확인 정보와 과장된 사실들까지 함께 퍼뜨린다. 전달하는 사람은 소문의 전파에 합류하는 데서 오는 일종을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고, 전달받는 사람은 스스로 확인하고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그저 누구로부터 들었다거나 어디서 나온 것이라는 ‘출처의 권위’에만 의존한다.

두려움이라는 전염병은그렇게 해서 기하급수적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아직확진 사례는 얼마 되지 않고 지역적으로도 국한돼 있지만 SNS를 통해 알려진 “메르스 확진” 병원은 이미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이른다. 이런저런 전문가의 입까지 빌어 공기를 통해서도 전염된다든가 치사율이 40%가 넘는다는 식의 끔찍한 괴담이 그럴듯하게 퍼져나간다. 이렇게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으로 이어지며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낳는다.
#두려움과 공포가 군중의 광기로 치닫는 상황을 우리는 주식시장에서 자주 목격한다. 주식시장은 늘 과도한 오버슈팅 속에 거품과 패닉을 낳는다.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사람들은 모두가 낙관주의자가 돼 거침없이 주가를 끌어올리지만 거품이 꺼지고 패닉에 휩싸이면 망연자실한 채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배울 게 있으니 시장은 극단에 다다르면 스스로 교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지금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래서 심리적 공황 증세까지 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가라앉을 것이다. 아마도 제풀에 꺾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한번 흔들린 상상력은 하루아침에 가라앉지 않는 법이니까.
#세상에 공짜 없다. 이게 다 그동안 방심했던 탓이다.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홍콩과 중국을 강타했을 때 우리는 멀리서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고통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지금처럼 직접 겪어봐야 모두가 발벗고 나서 방역 체계든 뭐든 고칠 수 있다. 스스로 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는 묻는다. 그렇다면 과연 개인으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미확인 괴담이 SNS로 전해질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침착하게 그 진실성을 따져볼 것, 그리고 혹시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흥분하는 대신 침착함을 유지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관찰할 것. 이것이 두려움이라는 전염병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대더라도 나 혼자만은 제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메르스가 아니라 우리가 자주 걸리는 계절성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2000명이 넘는다. 정부의 방역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두려움과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을 빌자면, 이번 사태가 종결되더라도 메르스 바이러스는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새로운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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