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박근혜정부 외교라인의 불감증

머니투데이 한택수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 2015.05.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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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박근혜정부 외교라인의 불감증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국가별 지분율은 아직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중국 정부가 명백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20일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가 스스로 한국지분은 3~5%가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뉴스를 보고 개인적으로 나라의 품격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최 부총리의 발언이 마치 동북아개발은행이라는 내집 마련의 꿈은 처음부터 포기한 채 AIIB라는 남의 집에 세 들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집주인에게 굽신거리는 행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참에 우리가 주장해온 동북아개발은행과 AIIB에 대해 지난 20여년 간의 사실관계를 냉정히 밝혀보자.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한반도의 평화통일 구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외교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뿐만 아니라 동북아개발은행 추진 등 경제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이러한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부터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할 때까지도 계속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추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이 추진해온 AIIB가 정식으로 설립되면 박 대통령이 생각해온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꿈은 무산된다.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제시한 수많은 외교비전을 현실화할 결정적인 수단과 도구를 잃는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의 외교수장인 윤병세 장관을 비롯해 최경환 부총리 등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위해 그동안 외교적인 노력을 했다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직접 AIIB 설립을 추진해온 중국은 물론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 기존 국제개발금융기구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미국, 일본 등과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관해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외교적 무능이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구상은 애당초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이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꿈꾼 희망이자 미래에 대한 준비였다. 불과 1~2년 전 중국 정부가 AIIB 설립을 들고나오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반에 고 남덕우 총리를 비롯해 많은 분이 이미 아시아개발은행 외에 새로운 지역개발은행인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해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지역의 경제번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구상을 선도해왔고, 국제금융계에서도 한국이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추진을 희망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되어왔다(필자도 과거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민간인 신분으로 두 차례나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아시아지역에서 기존 아시아개발은행(ADB) 외에 새로운 개발금융기구가 설립된다면 명분상 오래 전부터 한국이 주장해온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이 국제사회에서 당연히 우선 검토되고 논의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했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정부가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구상을 주변국에 먼저 제안했더라면 설령 여러 가지 여건상 동북아개발은행 구상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AIIB 참여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새우등 신세가 되었다는 국내외의 비아냥과 국격(國格) 손상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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