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라진 김과장' 이후의 진풍경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2015.04.20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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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라진 김과장' 이후의 진풍경


요즘 세종청사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진풍경은 출근시간부터 시작된다. 공무원들의 규정상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하지만 ‘지각생’은 꼭 있다. 지각생 중 상당수는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근하는 이들이다.

도로상황에 따라 10여분 가량 지각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과거에는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지각할 것 같은 상황이라면 외출증을 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각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진풍경은 점심시간에도 이어진다. 규정상 점심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모든 직장인이 마찬가지겠지만, 식사를 하다보면 점심시간을 약간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요즘 세종청사 공무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청사 근처에 식당이 많지 않아 멀리까지 식사를 하러 가더라도 1시 이전에는 무조건 복귀해야 한다. 서울 출장을 간 공무원들이 퇴근 시간 무렵 세종으로 헐레벌떡 복귀해 ‘퇴근 기록’을 남기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진풍경은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사라진 김과장' 사건이다. 기획재정부의 과장급 공무원이 서울에서 출장근무를 한다고 보고한 뒤 종적을 감췄다가 적발된 일이다. 속된 말로 '땡땡이를 치다' 걸린 것으로, 이후 국무조정실은 출장이 잦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출장 행적을 파악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출장이 잦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3개월간의 외부 행적을 직접 소명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출입증까지 제출받았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자 볼멘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최근 출근길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잠재적 죄인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공직기강이 해이해졌다면 바로잡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일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움 마음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종관가에서 ‘사라진 김과장’이 등장하기 전 가장 많이 회자됐던 단어는 ‘길과장’이었다.


서울과 세종으로 이원화된 업무구조 탓에 잦은 출장을 떠나야 하는 세종청사의 공무원을 빗댄 말이다. 잦은 출장을 반길 공무원이 얼마나 될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무원들의 출퇴근 기록이나 뒤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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