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컵라면과 정동영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15.04.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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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양당 구도에선 중도 선점이 유리… 국민모임, 대안적 정치세력 부상 땐?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간단한 퀴즈 하나!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휴양객만을 상대로 컵라면을 판다고 가정하자. 경쟁자는 단 한명이다. 판매하는 컵라면의 종류나 가격은 똑같다. 컵라면을 사먹으려는 휴양객 입장에선 어디서 사든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 무조건 1m라도 가까운 곳을 선택한다. 휴양객은 오직 바닷가에만 있고, 바닷가 전체에 고루 퍼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컵라면을 최대한 많이 팔려면 해운대 바닷가 어디에 위치를 잡아야 할까? 해변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0에서 10까지 똑같은 간격으로 모두 11개의 점을 찍고 그 중 하나의 위치를 선택해야 한다. 이른바 '로케이션 게임'(location game)이다.



만약 내가 왼쪽 끝 0의 위치를 선택하다면 경쟁자는 나의 바로 오른쪽에 위치를 잡을 것이다. 그럼 휴양객이 해변 어디에 있든 나보다 경쟁자와 더 가깝게 된다. 손님은 모두 경쟁자의 몫이 된다.

반대로 내가 오른쪽 끝 10의 위치로 가면 경쟁자는 나의 바로 왼쪽에서 모든 손님을 가로챈다. 내가 1,2,3,4 또는 6,7,8,9의 위치로 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쟁자는 나의 바로 옆에서 나보다 더 넓은 지역의 손님을 상대하며 더 많은 컵라면을 팔게 된다.



내가 경쟁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컵라면을 최대한 많이 팔 수 있는 위치는 바로 5의 지점이다. 이 경우 경쟁자도 바로 내 옆에서 장사를 하게 된다. 그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상관없다. 나와 경쟁자는 해운대 바닷가의 휴양객을 정확히 절반씩 상대하며 똑같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해운대 컵라면과 정동영
이게 바로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말하는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이다. 상대방의 전략을 알게 된 뒤에도 더 이상 나의 전략을 바꿀 필요가 없는 안정적인 상태가 '내쉬균형'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가 프린스턴대 대학원생 시절 만든 개념이다.

이를 활용한 '로케이션 게임'은 해럴드 호텔링(Harold Hotelling) 전 노스캐롤라이나교수가 고안했다. 호텔링이 소개한 사례는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선 우리 상황에 맞게 컵라면으로 각색했다.


호텔링은 '로케이션 게임'의 결과가 보여주듯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지 않는 시장에선 기업들이 중간지대의 평균적인 소비자를 집중 공략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제품과 서비스의 다양성이 떨어져 소비자의 후생은 줄어든다. 바로 '호텔링의 역설'이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정책이나 이념에서 별다른 차별성 없이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미국의 양당 정치가 대표적인 '로케이션 게임'의 사례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선거 때만 되면 각각 좌클릭, 우클릭해 중원을 파고든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책사로서 역사상 최고의 '정치 천재'로 불리는 딕 모리스(Dick Morris)는 "중도를 선점하는 자가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주요 플레이어가 2명일 때 얘기다. 문제는 또 다른 경쟁자가 부상해 주요 플레이어가 3명 이상이 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엔 한가운데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정동영 전 의원이 4.29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정 전 의원과 재야 진보인사 등이 중심이 된 '국민모임'이 만약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이념적으로 새정치연합의 왼편에 서게 된다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이념적 좌표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진보 진영의 이념적 지형이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건 여당 원내지도부의 '좌클릭' 시도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였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번엔 자신이 발의한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안을 앞세워 여당의 중원 공략을 주도하고 있다. 상황은 바뀌었고 이념적 위치의 재설정은 불가피하다. 이젠 새정치연합이 그에 맞는 새 전략을 꺼내 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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