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아도취’를 위해 획일적 소비…“남의 반응이 곧 내 삶”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 홍재의 기자 2015.03.2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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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없는 사회/'나'를 잃고 '너'에 기대다] <中> '타아도취'

편집자주 ‘힐링’의 시대가 가고 ‘자존’의 시대가 왔다. 지난 몇 년 간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위로 키워드인 ‘힐링’이 감정을 밖에서 안으로 수렴하는 수동적 태도로 접근했다면, ‘자존’은 숨겨왔던 자신의 내면을 타인의 눈치없이 외부로 드러내는 능동적 몸부림이다. 하지만 2015 대한민국은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댓글에 영향받고 움직인다. ‘허니버터칩’ 사태에서 보듯, 품귀 현상을 빚는 대열에 끼지 못하면 낙오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뒤처짐의 느낌은 자존감 바닥의 일부 세태를 대변하고 있다. 다양성이 요구받는 시대에, 획일성이 지배하는 모순적 상황을 타개하는 일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를 잃고 ‘너’에 기대는 자존 상실의 시대를 조명했다.

‘타아도취’를 위해 획일적 소비…“남의 반응이 곧 내 삶”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미국의 사진작가 바바라 크루거가 데카르트의 명언을 차용해 비튼 이 명제는 자본주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소비의 덕목을 요약한다.

그러나 타인의 판단과 취향이 곧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인터넷 시대에는 소비 역시 ‘정답’이 존재한다. ‘모방 소비’ 또는 ‘동조 소비’가 그것이다. 인기 연예인이 착용한 액세서리,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다수가 지목하는 ‘신상’들에 다가가야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원이 됐다는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양윤(심리학) 이화여대 교수는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유경험자나 인기 연예인의 이야기는 신뢰도가 높다”며 “특정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그 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심리가 생기고, ‘집단 규범’에서 이탈되고 싶지 않아 동참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인의 판단 못지 않게 타인의 반응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나’를 인식하는 소위 ‘타아도취’ 개념인 셈. 이를 위해 소비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현장으로, 그리고 이 현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옮겨와 클릭과 댓글을 통한 존재 확인서로 재생산된다.



◇ 타인의 반응으로 내 존재 ‘확인’…‘타아도취’

소비는 타인으로부터 자존감과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소통의 창구인 SNS로 옮기기위한 일종의 재료다. 사치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성공을 증명하는 것이라기보다 타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보다 더 포장된 자신이 인식되도록 유도하는 욕구의 분출구다.

록페스티벌에서 손목에 두른 팔찌와 현장 사진은 콘텐츠의 만족감 이상으로 자신의 이미지 상승효과를 노린 속내가 크다는 것.


직장인 이현정(여·34)씨는 “많은 사람의 반응을 유도하기위해 일부러 내가 가진 명품백이나 고급 자동차를 살짝 엿보이게 치밀한 설정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다”며 “감탄사나 부럽다는 댓글을 보면 내 자존감이 높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케아 같은 가구업체를 통해 산 가구를 조립하는 일상도 소통의 도구다. 폼 나는 물건보다 폼 나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 완제품 대신 조립품의 조립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성취감과 애착의 감정을 팔아 타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타아도취’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재료는 ‘셀피’(스마트폰이나 웹카메라로 자신의 모습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다. 전 세계적으로 SNS에 오르는 셀피는 하루 평균 3억5000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20대 남자 대학생은 “셀피를 찍고 전시하는 이유는 SNS속 친구들에게 말을 건네기위한 일종의 제스처”라며 “‘리트윗’이나 ‘좋아요’가 찍힌 걸 보면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보다 연출된 자아가 속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SNS가 욕망이 투영된 ‘연출된 일기장’이나 ‘타인지향적 나르시시즘의 현장’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일명 '허세 셀카'가 유행하고 있다. 자신의 소비패턴을 자랑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심리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보다 '연출된 자아'를 표현한다.<br>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일명 '허세 셀카'가 유행하고 있다. 자신의 소비패턴을 자랑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심리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보다 '연출된 자아'를 표현한다.
◇ 쇼핑, 성형, 개명 등 ‘소비의 표준화’…“타인의 동조 반응이 중요”

쇼핑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 ‘완벽’과 ‘스펙’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정신적 피폐함은 물질적 소비를 통해 보상받는 셈이다. 무언가 구입함으로써 무언가를 이뤘다는 자존감은 타인을 주도하거나 최소한 뒤처지지 않았다는 위안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한 30대 여성은 “유행에 뒤처지지 않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무시당할 일이 없다”며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온라인의 특성상, 일정한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타인의 반응에 따라 자존감이 좌우되는 현실은 전통적으로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진 ‘성형’ ‘개명’ 분야에도 보편적 개혁으로 적용되고 있다.

직장인 장모(여·29)씨는 주걱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에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1년 여 간 취업이 쉽지 않았다. 주변에선 주걱턱을 원인으로 꼽았다. 망설이던 그는 연예인들도 양악수술을 받는다는 얘기와 자신의 얼굴을 ‘틀린 외모’라고 지적하는 사회 분위기에 마음이 흔들렸고 고민 끝에 수술대에 올랐다.

개명도 예외는 아니다. 개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이들도 집안에 우환이 반복되면 자신의 이름 때문이라는 지인의 지적에 결국 손을 들고 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달라진 모습이 SNS를 타고 번지면 타인의 호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반응은 또다시 다른 타인의 부러움과 시기심을 유발해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다.

이택광(경희대 영문과 교수) 문화평론가는 “결국 소비의 목적은 쓰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위한 것”이라며 “‘나도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해 타인의 긍정적 시선을 기대하고 ‘상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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