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나는 김영란법이 겁난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정치부장(부국장_ 2015.03.0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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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여의도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김영란법 본회의 처리에 관한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유승민 원내대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강기정 정책위의장,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2015.3.2/뉴스1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여의도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김영란법 본회의 처리에 관한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유승민 원내대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강기정 정책위의장,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2015.3.2/뉴스1


20여년전, 초년 기자시절이다.
경제부에서 모 경제단체를 출입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점심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 회사로 들어가는 내게 봉투가 건네졌다. “선배들도 다 받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차창 밖으로 내던지듯 돌려준 뒤로는 다시 건네지지 않았다.

촌지에 대한 나의 ‘순결’은 어느 재개발 조합 관련자에게서 깨졌다. 취재후 돌아와 펼쳐본 취재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져 있던 봉투 속에 들어 있던 10만원. 연락이 안돼 돌려주지 못하고 안주머니에 한달 가까이는 갖고 다니다가 어느날 밤인가 ‘만취’를 핑계로 빈 지갑 대신 그 봉투로 손이 갔다.



몇번이었을까. 그런식으로 ‘푼돈’이 든 봉투들이 주머니에 들어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내 똥이 돼 버린 건. ‘열 손가락을 넘어가진 않겠다’는 생각은 의미없는 위안이다. 빈손으로 만나기 멋쩍다며 굳이 건네는 크고 작은 ‘기념품’에서부터, 기업체가 부담하는 경비로 치는 골프, 그리고 얻어 먹을때가 압도적으로 많은 ‘밥값’에 이르기까지 ‘봉투’는 늘 내 곁에 있어 왔다.

기자한테 밥 얻어먹으면 3년 재수 없다고들 한다.



밥 사는 기자가 ‘희귀종’인 현실에 대한 패러디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법 제정안)이 통과되면, (보다 정확히는 제대로 시행되면) ‘공짜 밥’으로 대변되는 여러가지 관행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론인들보다 더 언론인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녹취록 파문’으로 곤욕을 치른 이완구 총리도 후보자 시절,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앞으론 점심 얻어먹지 못할거라고 걱정을 했다.

정작 언론인들은 별로 걱정을 안한다.


기자협회보는 지난주 '김영란법 두렵지 않다'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일부의 구악적인 행태'를 침소봉대해 모든 언론인이 도매금으로 매도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가장 특혜를 많이 받았을것 같은 중앙일간지들도 이총리후보자 파문이 불거진 직후 “누가 김영란법 막아달라고 했냐”고 했다.

그 당당함이 보기 좋지만, 현실을 외면한 허세이거나, 혹은 ‘우린 안 걸린다’는 자신감으로 비쳐지는건 이 동네에서 오래 찌들어 살아온 탓일 것이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기자들이 대기업 언론관련 재단의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 연수를 가는 것 같은 행위는 “사회상규상 용인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자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기업들이 취재비용을 지원하는 대규모 해외 기술관련 행사 취재는 허용될까? 절친한 친구가 술한잔 사면서 기사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런 애매한 상황들이 꼬리를 물 터인지라 김영란법이 통과된들 제대로 시행될수 없을거라는 ‘과소집행’기대가 언론인들 심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위법’을 방관하다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칼을 들이대는 ‘표적집행’의 대상이 되지만 않는다면 별일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할만 하다.

만약, 평상시에도 예외없이 법을 집행해 처벌한다면 ‘과잉집행’이라고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원안대로라면 이런 상황이 언론인에만 해당되는게 아니고 1500만, 혹은 2000만명에 달하는 국민에게 적용됐을 것이라는 점이 김영란법의 폭발력이다.

머니투데이 더 300이 줄곧 김영란법에 대해 보다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온 것은 이 법이 ‘과소집행, 표적집행, 과잉집행’ 사이를 오가며 무력화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잠자던 김영란법이 뒤늦게나마 논란과 절충을 거쳐 3일 본회의를 앞두고 막판에 일부 보완 절차를 거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2일 “김영란법이 국민의 뜻이고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정도가 됐으면, 김영란법은 이제 우리 옆에 현실로 다가 왔다.

당연스럽게 여겨졌던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비정상을 고쳐나가는건 입법부가 할 일이기 이전에 언론인의 기본 품성이다.
이제 김영란법 시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언론, 김영란법을 진지하게 겁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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