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한 공중파 방송에선올해 신년 기획으로 유명 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3일 연속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가 하면 국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열기가 좋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자발적으로 기업식 구조조정에 나서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계 비인기 학과들을 통폐합하고 입학정원도 줄이고 있다. 심지어 대학 총장이 직접 기업 현장을 방문해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취업난 하면 기업에서 으레 하는 말이 “대학 교육이 현장과 너무 괴리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르치지 않아 신입사원을 재교육시키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럴 여유가 없어졌다.무엇보다 성과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그것도 장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바로 나타나는 단기적인 성과다. 해마다 수천억 원씩 흑자를 내는 기업이 더 나은 실적을 위해 엄청난 감원을 단행한다든가,입사한 지 10년밖에 안 된 과장급 직원까지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몰리는 것도 결국은 단기적인 성과주의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도움이 되는 “준비된” 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비용 대비 수익 측면에서 소위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전공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상경계와이공계전공자를 뽑는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일류대 출신의 성적 좋은 졸업생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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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을 무시했다가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눈을 다시 한번 돌려보자. 기업들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입에 발린 듯이 얘기한다.한데 이런 인재는 시험으로 뽑을 수 없다. 우리가 보는 시험은 한마디로 ‘분석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분석력 문제는 남들이 낸 문제를 푸는 것이다.학교 시험처럼 정의가 분명하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주어지며, 정답이 하나뿐이다. 반면 창의력 문제는자기가 낸 문제를 자기가 푸는 것이다.명확한 정의도 없고, 주어진 정보도 충분하지 않으며, 정답도 여러 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험 문제는 없다.
인문학적 소양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인간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하기 힘든 건어쩌면 정상이다.물론이런 물음은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도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가르칠 것이다.우리 인간의 삶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것이니 말이다.